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시행을 불과 이틀 앞두고 우려됐던 ‘쓰레기 대란’은 일단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민간 소각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당장의 공백을 메우면서다. 그러나 급한 불은 껐을지 몰라도 폐기물 정책의 핵심 원칙이 흔들리고 근본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발생지에서 스스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며 현행 정책이 ‘처리’에만 매달린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민간 의존으로 대란은 피했지만…‘발생지 처리 원칙’은 후퇴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는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그대로 매립하지 못하도록 하고, 소각이나 선별을 거쳐 나온 잔재물만 매립하도록 하는 제도다. 수도권에서만 매년 약 370만 톤의 생활폐기물이 발생하고, 이 중 50만 톤가량이 직매립돼 왔다.
문제는 지난 4년간 수도권 지자체들이 공공 소각시설 확충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점이다. 필요한 시설은 2027년 이후에나 완공될 예정이어서 결국 지자체들은 민간 폐기물 처리업체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생활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은 사실상 무너졌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자체의 쓰레기가 충청·강원 지역 민간 소각시설이나 시멘트 공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 간 갈등과 ‘수도권 쓰레기 외주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늘어나는 쓰레기, 근본 원인은 ‘생활 방식의 변화’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쓰레기의 양 자체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배달 음식과 간편식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일회용 용기와 포장재 사용이 급증했다. 음식 하나를 주문하면 플라스틱 용기, 비닐 포장, 아이스팩, 일회용 수저까지 함께 배출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온라인 쇼핑 확대 역시 과대포장 문제를 키우고 있다.
지자체와 정부가 아무리 소각시설을 늘리고 민간 처리 용량을 확보해도 쓰레기 발생량이 계속 증가하는 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경기도의회가 2023년 발표한 관련 연구 보고서 역시 “폐기물 발생 억제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일부는 단기 성과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처리 책임’이 아닌 ‘생산 책임’으로 정책 전환해야
이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생산자책임확대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의 강화다. 이는 제품을 만든 기업이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도 포장재와 전자제품 등에 EPR이 적용되고 있지만 적용 범위와 책임 수준은 제한적이다. 실제로 배달 음식 용기, 복합 포장재, 일회용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어렵거나 비용 부담이 지자체로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포장 제한 ▲재사용 가능한 용기 의무화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 사용 억제 ▲생산 단계에서의 폐기물 감축 목표 설정 등을 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쓰레기 처리 비용을 지자체와 시민이 아닌 생산자가 부담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국회의 역할이 핵심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결국 정부와 국회에 있다. 공공 처리시설 확충을 미루고 민간 외주로 시간을 번 상황에서 쓰레기 발생 구조를 바꾸는 입법과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기는 ‘시한폭탄’으로 남게 된다.
종량제봉투 판매 수입으로 실제 처리 비용의 30%도 충당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민간 처리비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쓰레기 문제는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문제”라며 “발생지 처리 논쟁을 넘어 애초에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생산자 책임 입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직매립 금지 시행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쓰레기를 어디에서 태우느냐보다 중요한 질문은 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는가다. 이제 정책의 초점은 ‘처리 능력’이 아니라 ‘발생 억제’로 옮겨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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