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 수도권에 위치한 케손시티(Quezon City)는 인구 310만 명이 넘는 필리핀 최대 도시이다. 이 거대한 도시를 환경 선구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케손시티 시장 조세피나 ‘조이’ 벨몬테(Josefina “Joy” Belmonte)이다. 그녀는 플라스틱 오염과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에 맞서 도시 차원의 해법을 실천해온 공로로 2023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수여하는 최고 환경상 중 하나인 ‘지구 정책 리더십 챔피언(Champion of the Earth – Policy Leadership)’에 선정됐다.
벨몬테의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케츠나(Ketsana)는 기록적인 폭우와 대규모 홍수를 일으켰고 케손시티 역시 도로가 물에 잠기며 주민들이 지붕 위로 대피해야 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홍수가 빠진 뒤 도시 곳곳에는 비닐봉지와 일회용 포장재,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강처럼 쌓여 있었다. 이 장면은 벨몬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그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부시장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벨몬테는 2019년 시장에 당선됐으며, 케손시티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장이다. 고고학자를 꿈꾸던 그는 결국 공공서비스의 길을 택했고 환경 보호를 ‘좋은 거버넌스’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 벨몬테는 “좋은 거버넌스란 환경을 잘 관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며, 도시 행정의 중심에 환경 정책을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의 시정 아래 케손시티는 플라스틱 오염 감축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호텔,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매장 내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일회용 비닐봉지, 식기, 빨대, 용기, 포장재 사용을 금지했고 시민들이 재활용품과 일회용 플라스틱을 가져오면 포인트로 환산해 식료품 구매나 전기요금 납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쓰레기에서 캐시백(Trash to Cashback)’ 제도를 도입했다. 선거철마다 대량으로 발생하던 방수포 폐기물을 재활용 가방으로 바꾸는 ‘보트 투 토트(Vote to Tote)’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특히 주목받는 정책은 ‘사셰(sachet)’ 문화에 대한 대응이다. 필리핀에서는 샴푸, 세제, 조미료 등을 소형 비닐 포장에 담아 판매하는 사셰가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높여왔지만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해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벨몬테는 이를 “가난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 환경 문제”라고 지적하며, 제조업체의 책임 있는 포장 전환을 촉구해왔다. 그 일환으로 2023년부터 도시 전역의 소매점에 세제와 생활필수품을 용기에 담아 구매할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을 도입했으며, 이는 포장 제품보다 저렴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벨몬테의 환경 정책은 플라스틱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케손시티는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연간 예산의 11~13%를 기후 대응과 적응 프로그램에 투입하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위해 도시 공원 수를 두 배로 늘리고 전기버스를 확대 도입하며 자전거 도로망을 2030년까지 거의 4배로 확충할 계획이다. 도시 농업을 장려하고 유기성 폐기물을 메탄가스로 전환해 조리에 활용하는 순환형 에너지 정책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유엔환경계획의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조세피나 벨몬테 시장의 리더십은 지방정부가 어떻게 전 세계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며 “도시는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오염과 폐기물이라는 ‘삼중 지구 위기’를 극복하는 변화의 엔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벨몬테는 국제 플라스틱 오염 협약 논의 과정에서도 지방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는 “실질적인 변화는 도시에서 일어난다. 도시 차원에서 행동이 시작될 때 변화는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념은 시민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정치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아버지이자 전 케손시티 시장이었던 펠리시아노 ‘소니’ 벨몬테로부터 “항상 사람들, 특히 가난한 지역사회를 직접 만나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이를 정치 철학으로 삼아왔다.
그 결과 벨몬테는 2022년 재선에 성공했으며 메트로 마닐라 지역 시장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당신의 비전을 믿을 때 환경이라는 어려운 메시지도 존중하며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조세피나 벨몬테의 사례는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국가 차원을 넘어 도시와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리더십은 환경 보호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도시 생존 전략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전체댓글 0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
방사능 연구에 바친 삶… 과학계의 거장 ‘마리 퀴리’를 기리며
과학 계정 ‘월드 오브 사이언스(World of Science)’가 7일 공식 X를 통해 19... -
스크린 넘어 세계를 보살피는 연기파 배우, ‘UN 평화대사’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의 삶과 헌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이자 인도주의 운동가인 샤를리즈 테론(Cha...
오피니언
more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㉗ CP 도입을 위한 8대 핵심 요소: 형식적 껍데기를 깨부수는 진짜 뼈대
많은 기업이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을 도입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도입은 ...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⑮] 수소에너지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에너지의 도전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면서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㉖ CP 도입의 5대 핵심 가치: 왜 지금 컴플라이언스 엔진을 켜야 하는가
수많은 기업을 방문해 자율준수 프로그램(CP)과 ISO 인증의 필요성을... -
[서정태의 ESG 현장 클리닉②] 중소기업, 위험성 평가를 비용이 아닌 경쟁력 강화로 인식해야 한다.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위험성 평가 인정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