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부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모래 지대. 내몽골의 울란부 사막은 한때 거센 모래폭풍으로 농경지와 마을을 위협하던 대표적 사막화 지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사이 이곳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모래 언덕 사이로 어린 묘목이 자라고 드문드문 숲이 형성되며 일부 지역은 다시 경작 가능한 토지로 복원됐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중국 임업과학원 수석과학자 '루치(Lu Qi)'가 있다. 그는 과학과 정책, 국제 협력을 연결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조림 사업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2024년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수여하는 최고 환경상 ‘지구 챔피언(Champions of the Earth)’ 과학·혁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막화, 중국의 오래된 위기
중국 국토의 약 5분의 1은 사막 또는 사막화 위험 지역이다. 기후 변화와 과도한 개발, 수자원 고갈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사막은 매년 수천㎢씩 확장되며 농경지와 도시를 위협했다. 모래폭풍은 베이징까지 도달했고, 토지 황폐화는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978년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가 바로 '삼북 방풍림 사업'이다. 해외에서는 ‘그린 그레이트 월(Green Great Wall)’로 불리는 이 사업은 중국 북·서·동북부에 걸쳐 거대한 방풍림 벨트를 조성하는 계획이다.
루치는 초기 현장 조사 단계부터 참여해 30년 넘게 이 프로젝트의 과학적 기반을 다져왔다.
숲은 심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
루치의 접근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식목 사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막 복원을 감성적 캠페인이 아니라 철저히 분석 가능한 “데이터 과학의 문제”로 인식한다. 먼저 토양의 염분과 수분 변화를 장기적으로 축적·분석해 토지의 회복 가능성을 정밀하게 진단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지역별 강수량 변화 예측 모델 개발로 이어지며 기후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복원 전략의 기초가 된다.
또한 그는 가뭄 저항성이 높은 토종 수종을 선별해 생존율을 높이고 단일 수종 식재가 아닌 혼합림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을 확보한다. 이는 단기적 녹화 성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자생적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결국 루치의 사막 복원은 데이터 기반 분석, 기후 예측, 종 다양성 전략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과학적 생태 복원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대규모 단일 수종 조림이 가져올 수 있는 생태적 위험을 인식하고 최근에는 자연 복원(Natural Regeneration)과 혼합림 확대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루치는 “사막은 포기된 땅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자산”이라며 생태 복원과 지역 경제를 통합하는 모델을 강조한다. 실제로 방풍림 조성 지역에서는 과수·목축·약용 식물 재배 등 새로운 소득원이 창출되고 있다.
국제 무대로 확장된 ‘녹색 장성’ 모델
그의 연구는 중국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루치는 유엔개발계획(UNDP), 지구환경기금(GEF) 등과 협력하며 사막화 대응 전략을 공유해왔다.
UNEP은 그를 “과학과 정책을 연결한 실천가”로 평가했다. 위성 데이터와 현장 실험을 결합한 복원 모델은 아시아·아프리카 건조 지역 국가들의 참고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그는 토지 복원을 기후 대응 전략과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숲은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토양을 고정해 모래폭풍을 줄이고 수자원을 보존하는 완충지대가 된다.
성과와 과제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사막 확장 속도는 2000년대 이후 눈에 띄게 둔화됐고 수백만 헥타르의 토지가 녹지로 복원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위가 안정되고, 주민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물 부족 문제와 장기적인 생태계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루치는 “단기 성과보다 생태계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2024년 중국 국무원 고문으로 임명되며 정책 자문 역할도 맡게 됐다. 과학자의 연구가 국가 전략으로 이어진 사례다.
사막에서 시작된 ESG 실험
루치의 사례는 ESG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환경(Environment) 측면에서 그는 황폐화된 토지를 복원하고, 식생을 회복시켜 탄소 흡수 능력을 확대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한다. 이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차원을 넘어, 생태계의 자생력을 회복시키는 장기적 환경 전략으로 평가된다.
사회(Social) 측면에서도 그의 프로젝트는 지역 공동체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복원 사업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소득을 증대시키며, 녹지 확대로 생활 환경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인다. 이는 환경 보호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모델로 주목받는다.
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는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수립과 국제 협력을 통해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한다. 장기적인 데이터 분석과 예측 모델을 바탕으로 전략을 설계하고, 다양한 국가 및 기관과 협력해 실행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투명하고 체계적인 거버넌스 사례로 평가된다.
그가 설계한 ‘녹색 장성’은 따라서 단순한 조림 사업이 아니라, 기후 대응과 경제적 가치 창출, 사회적 발전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종합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루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래 바다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가능성이다.”
울란부 사막의 모래 언덕 위로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의 상징이다.
클라마스 강이 자유롭게 흐르기 시작했듯 중국 북부의 사막에서도 새로운 생태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과학을 무기로 삼은 한 연구자의 집요한 설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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