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2(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는 경험을 소비하고 기록하며, 공간을 일상의 배경이 아닌 콘텐츠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공간은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촬영하고 공유하고, 곧바로 이동하는 ‘순간 소비’의 무대다. 소비 방식이 변화하면서 공간의 존재 방식도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선호하는 ‘순간 소비형 공간’은 어떤 특징을 가지며, 공간디자인은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까?

 

*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는 개인용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타블릿 등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성장한 세대를 말한다. 2001년 미국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가 그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순간 소비를 부르는 공간의 특성

 

디지털 네이티브는 공간을 ‘체류’가 아닌 ‘경험’으로 소비한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전시, 영상 속 한 장면을 위해 설계된 카페, 리포스팅과 공유를 위해 디자인된 팝업 공간 등은 모두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공간 소비를 상징한다. 공간은 브랜드의 철학이나 기능보다, 촬영각도, 색감, 구조의 독특함 등 ‘기록성’에 따라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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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된 아원고택을 배경으로 한 방탄소년단(BTS)의 2019 썸머패키지 화보. [출처=아원고택 인스타그램]

 

전라북도 완주의 한옥마을에 위치한 고택과 카페는 BTS의 방문 이후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공간은 조용한 아름다움과 정제된 감성이 공존하는 장소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나만 알고 싶은’ 공간으로 소비되며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었다. 이처럼 전통적 맥락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은 순간적인 방문과 기록의 대상이 되며, 기존의 콘텐츠 중심 소비 흐름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회자된다. 또한 미국 뉴욕 더 브로드 현대미술관의 ‘인피니티미러룸(Infinity Mirrored Room)’은 거울로 둘러싸인 구조로 인해 SNS에서 수백만 건 이상 공유되며 세계적인 팝업 공간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특히, SNS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순간 공간’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차별화된 공간은 더 많이 노출되고 소비된다. 결국 공간은 정체성과 기능보다는 경험성과 가시성에 따라 생존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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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더 브로드 현대미술관 전경, (우)인피니티 미러 룸. [출처=The Broad]

 

디자인 전략의 변화: 경험을 위한 연출, 사라짐을 위한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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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챤디올의 서울 성수동 팝업 스토어. [출처=Dior]

 

순간 소비형 공간은 오래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짧고 강렬하게 소비되기 위해, 철저히 이벤트성과 이동성을 고려해 설계된다. 

 

서울 성수동은 명품 브랜드와 예술문화 팝업전시가 밀집된 지역으로, 루이비통, 구찌 디올 등 글로벌 브랜드가 짧은 기간 동안 감각적 팝업스토어를 열어 SNS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동시에, 독립 예술가들이 전시와 체험을 결합한 이동형 전시장을 통해 공간을 예술 콘텐츠로 소비하는 흐름도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사라지기 위해 설계된 공간’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공간은 ‘컨텐츠화’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색채, 조명, 반사 재료,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은 모두 촬영 결과를 고려하여 설계된다. 이 과정에서 AI 기반 시뮬레이션이나 가상공간 테스트는 소비자 반응을 예측하고, 최적의 연출을 설계하는 데 활용된다.

 


백화점의 변신과 팝업스토어의 재정의: 더현대서울의 사례


전통적인 백화점의 역할 변화 속에서 더현대서울은 공간, 브랜드, 소비자 경험을 재설계하는 독특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의 여가 시간과 감성을 사로잡는 ‘설레는 공간’으로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팝업스토어가 있다.


더현대서울은 여의도라는 도심 거주인구가 적은 입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백화점과는 차별화된 MD 구성과 트렌디한 팝업 콘텐츠 전략을 도입했다. 특히 지하 2층은 젊은 세대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로 탈바꿈했으며, 이곳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하는 팝업스토어다. 브랜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서고, 그 콘텐츠가 SNS 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도록 유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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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 《슬램덩크》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개봉하면서, 더현대서울은 이를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해당 공간에는 특별 제작된 굿즈와 인증샷 촬영을 위한 포토매틱존이 설치되어, 세대를 넘어 팬덤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발길을 이끌었다. [출처=더현대]

 

특히 슬램덩크, 블랙핑크 지수 등 화제성 높은 IP를 활용한 팝업스토어는 젊은 세대의 ‘기다림’을 콘텐츠로 전환하고, 팝업 그 자체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기억될 경험’이 되도록 한다. 더현대서울의 팝업 전략은 공간이 단순히 임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 실험의 장이며 소비자 소통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한, 매출 연동 수수료 기반의 상생 모델과 바이어의 적극적인 브랜드 발굴 경쟁 구조는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백화점 운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에게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브랜드에게는 시장 테스트와 팬덤 확장의 기회를, 백화점에게는 활력과 유입을 제공하며 삼자 간의 긍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낸다.


결국, 더현대서울이 보여주는 사례는 팝업스토어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백화점의 미래 전략이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감성 소비’를 반영하는 새로운 도시 경험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순간 소비의 그림자와 지속 가능한 대안

 

순간 소비형 공간이 증가함에 따라 환경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짧은 주기로 설치되고 해체되는 구조물은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과도한 조명과 에너지 소비는 탄소 배출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팝업 공간은 ESG 경영 측면에서 재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화려한 공간 연출은 소비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되는 폐기와 자원 소모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에 대응하여 일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은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 재조립 가능한 모듈형 구조, 폐기물 최소화를 고려한 설계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더현대 서울은 일부 팝업 공간에 재활용 가능한 구조물과 친환경 자재를 적용하고 있으며, 일회성 구조물을 최소화하는 운영 전략도 실험 중이다. 팝업스토어 후 남는 자재를 지역사회 전시나 공공 프로젝트에 재사용하는 순환 설계 사례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아모레 성수'에서 재활용과 업사이클링을 테마로 한 '아모레리사이클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바 있다. 이 팝업스토어는 성수동에서 발생한 폐기물과 타 브랜드 팝업스토어에서 사용된 가구를 수거해 재활용 소재로 활용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설치물과 친환경 브랜드 전시를 통해 소비자에게 지속 가능한 소비와 순환의 가치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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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 가능한 팝업 공간은 공간 자체의 지속 가능성과 함께 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사진은 아모레 성수에서 운영한 아모레리사이클(AMORE:CYCLE) 팝업스토어 [출처=아모레퍼시픽]

 

디지털 네이티브의 공간 소비는 무엇을 말하는가?

 

디지털 네이티브의 공간 소비는 기능보다는 관계, 체류보다는 이동, 건축보다는 콘텐츠 중심의 문화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공간디자인이 반드시 물리적 구조물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들은 공간을 '경험의 장면'으로 소비하며, 공유와 확산, 참여와 재해석을 통해 공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 소비 방식은 자칫 공간의 일회성, 자원 낭비, 감각의 피로도라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네이티브가 공간 소비를 보다 책임 있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디자인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간 소비자 스스로가 팝업 공간의 제작 과정이나 지속가능한 재료 사용 여부에 대해 정보를 얻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소비자가 직접 공간의 의미를 구성하는 참여형 디자인을 확대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 재사용 가능한 콘텐츠형 공간 모듈 등의 개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순간 소비형 공간은 지속 가능성과는 멀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유연함과 확장성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가치가 존재한다. 지속 가능한 구조물이 아닌, 지속적으로 반응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관계를 맺는 공간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성과는 멀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유연함과 확장성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가치가 존재한다. 지속 가능한 구조물이 아닌, 지속적으로 반응하고, 의미를 생성하며, 관계를 맺는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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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네이티브 [출처=ChatGPT로 만든 이미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공간을 빠르게 소비하고 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공간을 이미지로, 경험으로, SNS 속 콘텐츠로 남긴다. 이들이 남긴 ‘순간’은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며 공간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렇기에 공간디자이너는 ‘지속적으로 기억되는 순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기록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 공간은 감성을 이해하고 기억을 설계하며, 순간을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선택하는 공간은 단순히 트렌디한 장소가 아니라, 감각의 언어이자, 감성의 플랫폼이다.

 

 

김동헌 (Kim Dong Hun) | 디지털 시대, 공간의 미래를 연구하는 전문가 


AI 기반 공간디자인과 뉴미디어 아트, ESG 건축을 연구하는 공간디자인 박사과정 연구자. 기계공학과 법학을 전공한 후 LG전자 특허센터에서 기술 전략과 혁신을 경험했으며, 현재는 AI와 디자인, 철학이 융합된 공간의 방향성을 탐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공간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인간성과 기술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디자인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공간디자인전공 겸임교수로 미래학(Futurology)와 공간철학을 강의하며, ㈜리네아디자인의 이사로 공간의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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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의 공간디코딩 ⑥]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순간 소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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