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버넌스 차원에서 본 국가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 정책의 충돌
서울 종묘 앞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국가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 간 정책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과 관련해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요구하며 사업 승인을 일시 중단하고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한 달 가까이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회의 개최 의사만 전달한 상태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대응을 “유네스코 요청에 대한 회신으로 볼 수 없다”며, 종묘를 포함한 세계유산 보존과 관리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우리 유산을 보호하면서도 보존과 개발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것이 국가유산청의 원칙”이라며,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한편 서울시도 보존 관리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도시 재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정책 목표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다. 세운4구역은 2004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15차례 심의를 거쳐 건물 높이를 종로변 기준 55m, 청계천변 기준 71.9m 이하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가 고시한 101∼145m 기준은 기존 합의를 크게 초과하며 세계유산과의 조화 문제를 불러왔다.
거버넌스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안은 다층적 이해관계와 협력 구조의 부재가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국제적 기준을 통해 문화유산 보호를 요구하고, 국가유산청은 국가적 법령과 관리 책임을 근거로 보존을 추진한다. 반면, 서울시는 지역 개발과 투자 유치라는 도시 전략적 목표를 우선하면서, 국제 기준과의 조율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을 조화롭게 관리하기 위해 거버넌스 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국가·지자체·유네스코 간 정보 공유 체계 강화, ▲문화유산 영향평가(HIA)의 의무화 및 투명한 공개, ▲도시계획과 세계유산 보호 기준의 사전 조정, ▲주민·사업자 참여를 포함한 다층적 의사결정 구조 구축 등이 요구된다.
국가유산청은 이미 문체부와 서울시를 포함한 관계 기관 회의를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논의될 가능성도 높다. 허민 청장은 “우리 유산을 보호하면서 개발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종묘 앞 재개발 논란은 단순한 건물 높이 논쟁을 넘어 국가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개발이라는 두 정책 목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거버넌스적 과제이자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국가적 책임의 문제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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