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의 삶은 한 소년이 자연에 품었던 호기심이 어떻게 전 세계적인 환경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어린 시절 영국 시골의 버려진 채석장을 누비며 망치를 들고 암모나이트 화석을 찾아다녔다. 수천만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화석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이후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의 출발점이 됐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그는 학문적 연구의 길보다는 자연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에 자신의 소명이 있음을 깨달았다. 텔레비전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 그는 BBC에 입사해 1954년 ‘주 퀘스트(Zoo Quest)’를 통해 처음으로 화면 속에 등장했다. 오랑우탄과 코모도왕도마뱀 같은 이국적인 동물을 소개하던 이 프로그램은 영국 시청자들에게 자연 세계를 생생히 전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애튼버러는 단순한 진행자를 넘어 자연사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9년 발표한 대작 『지구상의 생명(Life on Earth)』은 미생물에서 인류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시리즈로, 제작에만 3년이 걸렸고 전 세계를 누비며 촬영한 거리는 150만 마일에 달했다. 이 작품은 약 5억 명의 시청자에게 도달하며 자연 다큐멘터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했다. 이후 ‘라이프’ 시리즈를 비롯한 연속된 작품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린 위기를 함께 드러냈다.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생태계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애튼버러는 자연이 더 이상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목격했다. 인간의 활동은 지구 육지의 4분의 3을 변화시켰고, 약 100만 종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는 이미 1980년대 저서 『살아있는 행성』에서 인류가 가진 힘이 지구를 구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다큐멘터리는 감탄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메시지를 분명히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유엔환경계획(UNEP)은 데이비드 애튼버러에게 ‘지구 챔피언(Champions of the Earth) 평생 공로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유엔이 수여하는 최고 수준의 환경상으로,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오염 등 지구적 위기 해결에 평생을 바친 인물에게 주어진다. UNEP 사무총장 잉거 앤더슨은 그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애튼버러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민족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모든 인류는 하나의 지구 시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수십 년간 유엔환경계획과 협력하며 캠페인과 단편 영화에 목소리를 더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기후 위기와 생태 붕괴를 해결할 수 없으며, 국제적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거듭 주장해 왔다.
9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애튼버러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 앞에 서서, 인류가 이미 위기의 문턱을 넘어섰음을 경고하는 동시에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음을 강조했다. 그의 메시지는 비관에 머무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 화석연료 탈피, 식물성 식단 전환, 개발도상국의 삶의 질 향상 등 구체적인 해법을 통해 인류가 자연과 다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차례 기사 작위를 받고, 그의 이름을 딴 수십 종의 생물이 존재하며, 에미상과 BAFTA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수상했음에도 애튼버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전히 ‘이야기’다. 자연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랑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이야기다. 그는 한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자연사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문제는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자연과 멀어지는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평생은 자연을 기록한 역사이자, 인류에게 책임을 묻는 연속된 질문이었다. 유엔 지구 챔피언 평생 공로상은 그의 업적에 대한 헌사이면서 동시에, 그가 평생 던져온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돌려주는 상이기도 하다. 자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는 이제 인류 전체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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