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정치자금 논란이 드러낸 한국 정치 거버넌스의 민낯
‘1억 원 공천헌금’ 의혹을 둘러싼 진술 충돌이 이어지면서 사건의 성격은 단순한 형사 책임 여부를 넘어 한국 정치 전반의 도덕성과 거버넌스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경찰이 핵심 인물인 강선우 무소속 의원의 전직 보좌관을 재소환하면서,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과 정치인의 책임 윤리에 대한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17일 강 의원의 전 보좌관 남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불러 조사했다. 첫 조사 이후 11일 만이다. 경찰이 재소환에 나선 배경에는 공천헌금 공여자로 지목된 김경 서울시의원과 남씨의 진술이 핵심 쟁점에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시의원은 경찰 조사에서 공천헌금 제안자가 남씨였으며,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 지역을 고민하던 과정에서 강 의원의 ‘상황’을 설명하며 금품을 요구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씨는 강 의원과 함께 김 시의원을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돈이 오가는 순간에는 자리를 비웠고 금품의 성격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후 강 의원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차량 트렁크로 옮겼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수사기관은 이 같은 진술 충돌이 단순한 기억 차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공천헌금의 실체와 책임 소재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세 인물 모두 금품 전달 장소와 강 의원의 현장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같은 진술을 하고 있는 반면 ‘누가, 어떤 인식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두고는 정면으로 엇갈린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의 방향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법적 판단을 넘어선다. 공천 과정에서 불법 자금이 오갔는지 여부와 별개로 정치인의 보좌 체계와 책임 구조가 얼마나 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금품 수수 사실을 사후에 보고받았을 뿐 직접 받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정치적 책임의 기준은 형사 책임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천을 둘러싼 금전 의혹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실 자체가 한국 정치 거버넌스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공천이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적 인맥이나 비공식 경로, 보좌진을 매개로 한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은 “몰랐다”는 해명으로 법적 책임을 피해가려 하지만 국민의 신뢰는 그만큼 빠르게 훼손된다.
정치인의 도덕성과 투명성은 사후 해명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금품 수수 여부를 떠나 보좌진의 행위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의혹이 제기됐을 때 얼마나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소명하는지가 정치적 신뢰를 좌우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진술의 일관성 부족과 해명의 시차는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찰은 확보된 진술을 토대로 오는 20일 강 의원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며, 필요할 경우 강 의원과 김 시의원, 남씨 간의 대질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 수사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공천과 정치자금 문제에서 투명한 거버넌스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정치권이 이 사안을 개인의 일탈이나 사법적 판단에만 맡긴다면 유사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천 절차의 공개성 강화와 정치자금 흐름에 대한 실질적 감시 그리고 정치인의 책임 윤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천헌금’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이름으로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특정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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