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저성장 시대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경제연대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은 9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특별세션에서 양국이 경제협력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전략적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일본 대표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주최하고 SK그룹과 최종현학술원이 공동 기획한 자리로, '견고한 한일 관계를 뒷받침하는 다각적 경제 협력'을 주제로 개최됐다. 양국 정·재계와 학계 주요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해 미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최 회장은 이날 기조 발언을 통해 "한일 협력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라며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고 실행력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국제 환경 변화가 한일 경제연대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가 양국의 구조적 저성장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자유무역 질서는 관세장벽과 수출통제 확대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국가 차원의 새로운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한일경제연대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룰 메이커(Rule Maker)'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에너지, AI, 고령화 대응 분야를 핵심 협력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양국이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에너지는 곧 안보"라며 "구매와 도입, 비축 등 전 과정에서 협력할 경우 사회 전반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력 비용을 낮추는 것이 결국 미래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AI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양국이 함께 대규모 'AI 팩토리'를 구축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AI 인프라를 공동 구축하고 이를 상품화해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협력 모델도 제시했다.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서 양국 간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의료 서비스와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전략 측면에서는 반도체와 AI를 양국의 핵심 무기로 꼽았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과 일본의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결합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전략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이어졌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공급망과 에너지, AI 분야에서 양국의 경제 교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수도권 집중과 고령화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 역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 격변기 속에서 서로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영상 축사를 통해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지속 가능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제안했다. 그는 기업과 학계, 청년세대, 정부가 참여하는 상설 협력 플랫폼, 이른바 '빅 텐트(Big Tent)'를 구축해 규제와 표준 차이, 정치적 변수 등 협력을 가로막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일경제연대를 통해 양국 경제 규모를 단순 합산한 6조 달러를 넘어 1조 달러 이상의 추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며 "이는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미래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석한 도쿠라 마사카즈 전 게이단렌 회장은 에너지 자급률 문제 해결을 위해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 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제안했으며, 가토 마사히코 미즈호은행 행장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일특별세션은 단순한 경제 교류를 넘어 양국이 직면한 공동 과제를 함께 해결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실질적 협력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AI와 에너지, 저출산·고령화라는 공통의 도전 앞에서 한일 경제연대가 동북아 경제 질서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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