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⑧] 기후위기와 전쟁이 부르는 애그플레이션, 대한민국 ESG의 새로운 과제
- 남재철
- 입력 2026.07.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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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와 전쟁, 애그플레이션의 서막
- 식량 수입국 대한민국, 장바구니가 흔들린다.
- 식량안보가 ESG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갈등이 동시에 세계를 흔들면서 식량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도 세계 곳곳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와 태풍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는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태평양의 고수온과 엘니뇨의 영향으로 기상이변이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내년 세계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농업은 기후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산업이다. 폭염은 벼와 과수의 수량과 품질을 떨어뜨리고, 가뭄은 농업용수 부족으로 이어진다. 대형 산불은 산림뿐 아니라 농경지와 농촌 기반시설까지 위협하며, 태풍과 집중호우는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에서 이러한 기상이변이 반복되면 국제 곡물 생산량은 감소하고 가격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쟁은 식량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비료 생산에 필요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고 농기계 운영비와 물류비도 함께 증가한다. 농산물은 생산부터 저장, 가공, 운송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상승은 결국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농산물 가격 급등 현상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다.
애그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다. 이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를 포괄하는 ESG의 핵심 의제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 감소는 환경문제이며, 식품 가격 상승으로 저소득층의 식생활이 위협받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과 경영은 거버넌스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소비하는 곡물의 80% 이상을 수입하는 대표적인 식량 수입국이다. 국제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 환율 변동과 물류비 증가까지 겹쳐 국내 장바구니 물가는 더욱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최근 몇 년간 국제 정세와 이상기후가 겹칠 때마다 식품 가격과 외식 물가가 크게 상승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만약 내년에도 세계적인 생산 감소와 공급망 불안이 이어진다면 식품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취약계층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비가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영양 불균형과 생활고가 심화될 수 있다. ESG의 사회적 가치가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
정부는 식량안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주요 곡물의 비축 확대와 수입선 다변화, 해외 농업 협력 강화는 물론 기후변화에 강한 품종 개발과 스마트농업 확산에도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동시에 농업재해보험 확대와 농업용수 확보, 디지털 농업 기반 구축 등 기후 적응 정책도 서둘러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농식품 바우처와 공공급식 지원 확대 역시 사회적 안전망 강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식품기업과 유통기업은 공급망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안정적인 원료 조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RE100과 ESG 경영은 더 이상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재생에너지 활용, 순환경제, 친환경 농업,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기후적응형 농업으로의 전환이 더욱 빨라져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식량이 곧 국가 경쟁력이며 국민의 삶을 지키는 공공재이다. 식량안보는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환경, 복지, 산업, 외교를 아우르는 국가적 과제이며 ESG의 핵심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와 전쟁이 불러올 애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물가 상승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구조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내년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는 사회보다, 미래 식량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사회가 더욱 지속가능하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ESG의 관점에서 식량안보를 준비할 때 대한민국은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회복력을 갖춘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남재철 (서울대학교 특임교수, 前 기상청장)
기상청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후 관측과 재해 대응 정책을 총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장, 수도권기상청장, 기상청 차장 등을 거치며 기상·기후 분야 전반에서 정책과 연구를 수행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이사 및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을 맡아 국제 기후 협력에도 참여했다.
마르쿠스 Who’s Who 과학기술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으며,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의 저자이며, 현재 기후변화 대응, 기상재해, 식량안보 분야에서 연구와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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