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코리아, 국회서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과 안전보건공시제 시대의 개막’ 정책토론회 개최
- R&D·예방투자·노동자 참여·안전보건공시 연계한 예방 중심 산업안전정책 제안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처벌과 규제 중심의 정책을 넘어 연구개발(R&D)과 예방투자, 노동자 참여, 안전보건공시를 연계한 예방 중심의 산업안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특히 산업안전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새로운 위험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연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ESG코리아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ESG로 설계하는 안전보건경영’ 출판을 기념해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과 안전보건공시제 시대의 개막’을 주제로 국회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산업재해 예방정책의 구조적 문제와 안전보건공시제의 역할을 짚고, 산업안전정책을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안전보건공단 예산 중 R&D 0.22%”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윤조덕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원장은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구조적 문제와 개선 방향을 발표하며 산업안전 분야의 국가 R&D 투자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윤 원장이 이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안전보건공단 전체 예산 1조4828억 원 가운데 안전보건연구개발 예산은 32억4100만 원으로 약 0.22%를 차지한다. 안전보건연구개발과 국제협력을 합한 비중은 0.47%, 정부 차원의 R&D 예산 비중은 0.10% 수준으로 제시됐다.
윤 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강화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의 제도적 사각지대와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체계 부족 등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난청과 근골격계·뇌심혈관 질환 등 직업성 질환 문제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구조 변화와 새로운 위험요인의 등장에 대응하려면 사고 발생 이후의 감독과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연구개발-위험성평가-예방투자-정보공시’를 연결하는 예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이날 발제의 핵심이다.
안전보건공시, 사고 건수 공개 넘어 ‘예방활동’ 보여줘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진경 지속가능경영재단 ESG전략담당이사는 안전보건공시제의 정책적 의미와 제도 정착 방안을 제시했다.
김 이사는 안전보건공시가 사고 건수나 재해율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 경영진의 책임, 위험성평가 등 실질적인 산업재해 예방활동과 안전보건경영 수준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기업의 자발적인 예방투자를 유도하고 산업안전을 비용이 아닌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ESG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투자로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염태영 의원 “사후 대응 넘어 위험 미리 예방해야”
염태영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산업안전을 사고 발생 이후 대응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위험을 미리 예방하는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생명뿐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 전체의 신뢰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안전보건공시제가 기업의 자발적인 안전투자를 촉진하고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문화를 확산하는 제도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공단 김인우 경영기획이사도 참석해 산업재해 예방과 안전보건경영 확산을 위한 공단의 역할과 현장 중심 안전문화 정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ESG경영의 핵심 의제로”
조준호 ESG코리아 이사장은 이번 토론회가 산업안전을 ESG의 핵심 의제로 논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ESG로 설계하는 안전보건경영’이 산업안전보건과 ESG·SDGs·노동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정책총서라고 소개하며 “노동자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업과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하청 간 위험의 외주화를 줄이고 공급망 전체의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한편, 안전보건 정보 공개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인 예방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시가 또 하나의 서류 돼서는 안 돼”
지정토론에서는 안전보건공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
이호동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는 공시된 안전보건 수준과 기업의 안전투자 실적을 금융·공공입찰·ESG 평가 등에 연계해 안전투자가 기업가치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유인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기업, 노동계, 학계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거버넌스 구축 필요성도 제기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ESG를 통한 산업재해 감축 과정에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사업장과 특수고용·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고 현장의 위험성평가 과정에서도 노동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험성평가를 안전담당자 중심의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노동자가 작업 과정에서 위험요인을 직접 찾아내고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구현 노무법인 한그루 대표는 안전보건공시가 또 하나의 행정서류나 이른바 ‘안전보건 워싱’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정 대표는 “아차사고를 적극적으로 찾아 500건을 보고한 기업이 5건만 보고한 기업보다 공시상 불리하게 평가된다면 기업이 위험을 적극적으로 찾아 공개할 유인이 사라질 수 있다”며 위험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공개하는 기업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에서 예방으로, 서류에서 현장으로”
이날 토론회에서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법률과 감독, 처벌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예방 중심의 산업안전 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주요 정책과제로는 산업안전 R&D 투자 확대를 비롯해 안전보건공시제의 실효성 확보, 노동자 참여형 위험성평가 강화, 중소·영세사업장 안전보건 지원 확대, 안전보건 성과와 금융·공공입찰·ESG 평가 연계, 원·하청 및 공급망 전반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등이 제시됐다.
강충호 ESG코리아정책연구원 원장은 “산업재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정책은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찾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기업, 현장의 예방역량을 높이는 것”이라며 “산업안전 R&D 확대와 안전보건공시제의 실효성 있는 정착을 양대 축으로 ‘처벌에서 예방으로, 서류에서 현장으로, 비용에서 투자로’ 산업안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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