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해 기소가 어렵더라도 범죄수익을 신속하게 몰수할 수 있는 이른바 ‘독립몰수제’가 우리 형사사법 체계에 도입된다. 범죄수익을 범죄자에게서 끝까지 박탈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디지털성범죄 등 초국가적·조직적 범죄에 대한 대응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0일 오후 7시22분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드디어 독립몰수제가 도입됐다”며 “우리 형사사법제도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중점 추진과제로 국회에 지속적으로 입법을 요청하고 필요성을 설명해 온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주요 민생·안전 법안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해부터 관련 입법을 국회에 요청했고, 올해 4월에는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협의를 거친 통합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후 이날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법률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제도 도입이 확정됐다.
독립몰수제의 가장 큰 변화는 범죄자의 유죄판결에 종속되지 않고 범죄수익 자체를 대상으로 몰수·추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범죄수익을 몰수하려면 범인을 특정하고 기소한 뒤 법원의 유죄판결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실제 범죄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절차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디지털성범죄처럼 해외에 기반을 둔 조직이 개입하거나 여러 국가를 거쳐 자금이 이동하는 범죄는 범인을 특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범죄자가 해외로 도피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형사재판 자체가 진행되지 못해 범죄수익을 박탈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 법 개정은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앞서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에는 보이스피싱, 불법 온라인 도박, 마약,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디지털성범죄, 헌정질서 파괴 범죄 등이 독립몰수 대상 범죄로 포함됐다.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국외로 도피하거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공소를 제기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수익에 대한 독립적인 몰수·추징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대해서도 독립몰수의 길이 열렸다는 점은 이번 제도의 중요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다만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는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대상에 포함하는 문제와 제3자에게 상속·증여된 재산에 대한 몰수 범위 등을 놓고 법적 안정성과 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논쟁도 제기됐다.
정 장관은 이날 X에서 이번 법 개정으로 “빠르고 효과적인 범죄수익 박탈과 환수가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범죄수익을 단순히 형사처벌의 부수적 결과로 보는 데서 나아가 범죄로 얻은 경제적 이익 자체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형사사법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셈이다.
범죄수익 환수는 피해자 회복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범죄자가 처벌받더라도 범죄로 얻은 돈이나 재산을 그대로 보유한다면 범죄 억제 효과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올해 4월에도 범죄수익을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대상 범죄를 불법사금융 범죄까지 확대하는 등 범죄피해재산 환수 제도를 강화해 왔다.
법무부가 독립몰수제를 민생·안전 분야의 핵심 입법 과제로 추진해 온 배경에는 범죄의 국제화와 자금 이동의 고도화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한 뒤 형사재판을 통해 범죄수익을 몰수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범죄수익의 이동을 신속하게 추적하고 범죄자에 대한 형사절차와 별개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수단이 추가된 것이다.
법무부는 앞서 범죄수익 환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수사관과 검사에 대한 전문교육을 확대하고 국제공조 역량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특히 가상자산을 활용한 범죄수익 추적과 국제적 자금세탁 대응 등 새로운 범죄수익 환수 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제도 도입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에서 ‘범죄로 얻은 이익을 끝까지 박탈하는 것’으로 형사사법의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범죄자가 해외로 도피하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범죄수익을 추적·환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독립몰수제가 확대되는 만큼 법원의 독립적인 심사와 재산권 보호를 위한 절차적 통제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수익과 무관한 제3자의 재산까지 부당하게 몰수되지 않도록 명확한 요건과 사법적 통제 장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제도의 실효성과 함께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정성호 장관은 이날 “마지막까지 국민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몰수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계기로 범죄수익을 신속하게 차단하고 피해 회복으로 연결하는 국가의 범죄수익 환수 시스템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할지가 향후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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