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헝가리의 작가 라즐로 크라스나호르카이(László Krasznahorkai)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는 그의 이름을 호명하며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비전적이고 강렬한 작품세계”를 이유로 들었다.
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예술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In the midst of apocalyptic terror, his oeuvre reaffirms the power of art)”라는 문장으로 수상 이유를 요약하며 인간이 맞서는 불안과 무질서그리고 그 속에서도 지속되는 예술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크라스나호르카이는 1954년 헝가리 남동부의 도시 줄라(Gyula)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하며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적 불안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동시에 경험했다. 이후 그의 문학은 언제나 “붕괴의 시대에 언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었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시 작가”로 평가하며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계보를 잇는 존재로 소개했다.
그의 대표작 '사탄탕고(Sátántangó.1985)는 쇠락한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공동체의 몰락과 인간의 탐욕과 구원에 대한 절박한 욕망을 서늘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채우는 문체로 유명한 이 소설은 ‘느린 용암의 흐름(slow lava flow)’처럼 서서히 독자를 압도한다.
미국 비평가 제임스 우드는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체를 “귀중한 화폐처럼 유통되는 문학적 언어”라 평했고, 수잔 손탁은 그를 “현대의 묵시록의 거장”이라 부르며 “그의 문장은 광기와 명료함 사이를 왕복하는 언어적 기도문”이라고 찬탄했다.
1989년 발표한 '저항의 우울(The Melancholy of Resistance)'은 순회 서커스단이 한 마을에 도착해 거대한 고래 사체를 전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고래는 구원과 공포를 동시에 상징하며 마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사건의 서막이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혼란과 폭력 그리고 권력의 유혹 속에서 파멸로 치닫는다.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극단적 세력이 자극되어 폭력이 확산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한 걸작”으로 평가했다.
그의 소설은 종종 명확한 교훈이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은 우리 운명인 상실감에 대한 인류의 특별한 반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의 문학이 절망을 극복하는 지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절망과 마주 서는 방식을 탐색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2021년에 발표한 허쉬트 07769(Herscht 07769)는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로 “희망은 실수다(Hope is a mistake)”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상의 붕괴를 확신한 물리학자가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미친 듯한 편지를 쓰며 구원을 요청하는 이야기로 현대 사회의 불안과 광기를 풍자한다.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이 “독일 사회의 불안을 예리하게 포착한 현대적 걸작”이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았다.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장은 길고 느리며 쉼 없이 이어지는 호흡으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붙잡는다. 그는 “시간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언어가 절대적인 진리를 포착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대신 그 불가능성 자체를 문학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의 작품은 1994년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Béla Tarr)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7시간에 달하는 ‘사탄탕고’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평론가 수잔 손탁은 “매 순간이 매혹적이었다”고 평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학이 지닌 고유한 실험성과 철학적 깊이를 세계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그를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의 거장”이라 표현하며, 그의 문학이 “현대의 불안과 인간의 무력감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예술적 응전”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 역시 “환상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선택”이라며, “그의 문장은 독자에게 사유의 긴장을 강요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문학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고 전했다.
흥미롭게도 크라스나호르카이가 오랫동안 비판해 온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역시 X에 “그의 수상은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준다”는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예술적 성취가 국가적 자긍심으로 환원되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이번 수상은 단순한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종말론적 테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던지는 문학적 선언으로 읽힌다. 전쟁과 불안, 생태적 위기, 정치적 분열이 세계를 압도하는 가운데 크라스나호르카이의 작품은 “언어가 여전히 인간의 유일한 피난처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노벨위원회의 공식 논평은 그 질문에 대한 암시처럼 들린다.
“In the midst of apocalyptic terror, his oeuvre reaffirms the power of art.”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예술의 힘을 다시 증명한다.”
그의 문장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바로 그 난해함 속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 문학이 단순히 위로하거나 설명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말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끝까지 붙드는 작가 라즐로 크라스나호르카이 같은 작가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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