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강경한 이민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로 꼽혀 온 덴마크가 이제는 유럽 정가의 ‘참조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영국 노동당 정부가 덴마크의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공무원을 파견하면서 덴마크식 접근법이 유럽 내 중도 정당들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중도 좌파의 재선 성공, 그 뒤의 강경 이민 정책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2019년과 2022년 총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유럽 중도 좌파 정당 중 드물게 장기 집권에 성공한 사례가 됐다. 여론조사에서는 2026년 선거에서도 재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정치 분석가들은 “전통적으로 연민을 강조했던 좌파가 난민·망명 정책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우파 포퓰리즘의 확산을 차단했다”는 점을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와 이전 총리 라스 뢰케 라스무센의 재임 기간 동안 덴마크는 난민 지위를 ‘임시 체류’로 규정하고 영구 정착까지 상당히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체제를 확립했다. 체류 허가는 1~2년 단위로 갱신되며 영주권 신청까지는 최소 8년이 필요하다. 여기에 숙련된 덴마크어 능력과 장기 정규직 근무 경험 등이 요구된다.
가족 재결합 역시 까다롭다. 양측이 모두 24세 이상이어야 하고 덴마크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지원금 수령 기록이 없어야 하며 재정 보증도 제출해야 한다.
영국 노동당, ‘덴마크 모델’ 도입 움직임
영국 노동당 정부 역시 불법 이민 문제를 두고 우파 성향의 개혁 영국당(Reform UK)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아왔다. 샤바나 마흐무드 내무장관은 “영국은 기존 모델을 그대로 고수해 왔다”면서 유럽 국가 중 가장 강력한 사례로 덴마크를 거론했다.
영국은 덴마크보다 더 강력한 기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영주 정착 대기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난민 지위를 2년 반마다 재검토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심지어 체류중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난민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될 전망이다.
비판론자들은 이는 덴마크보다 훨씬 강경하며 “영구적인 불안정 상태를 조성해 통합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효과는 입증됐지만… 국내 불만도 커지는 덴마크
덴마크 정부는 난민 유입 억제라는 목표를 분명하게 달성했다. 난민 지위 부여 건수는 2014년 6,031건에서 2019년 1,737건으로 감소했다. 작년 발급된 거주 허가 9만 9,811건 중 난민에게 발급된 것은 859건으로 1%에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 내부의 분위기는 복합적이다. ‘평행 사회(구 게토)’ 정책, 난민 자산 압류 제도(‘보석법’) 등은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으며 유럽연합(EU) 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도 코펜하겐에서도 최근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100년 만에 주도권을 상실했다. 전문가들은 높은 주택 가격과 더불어 당의 강경 이민 정책이 진보 성향 도시 유권자를 이탈하게 만든 영향을 지적한다.
난민 단체들은 “지나치게 높은 기준이 사회 통합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난민들이 ‘영원한 2등 시민’으로 남게 한다”고 비판한다. 난민들이 덴마크를 환영합니다(Refugees Welcome Denmark)의 미칼라 클란테 벤딕센 대표는 “젊은 난민들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면 범죄·갱단 등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전체가 변곡점에 선 ‘이민 정책의 재정의’
세계적 갈등·기후 재해의 확산, 이동 비용의 감소, 정보 접근성 상승 등으로 난민·이주 흐름은 전후 체제가 설계한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은 2010년 4,400만 명에서 지난해 1억 2,3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덴마크는 강경 정책을 통해 난민 신청을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줄였으며, 이는 영국과 여러 유럽 국가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덴마크 모델을 ‘대량 복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적 여건, 사회적 합의, 인권 기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 내에서도 비판은 커지고 있다. 스텔라 크리지 의원은 “끊임없는 불확실성을 강요하는 제도는 잔혹할 뿐 아니라 통합과 경제에도 역효과”라고 지적했다. 나치 점령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동했던 알프 더브스 상원의원은 노동당의 강경 노선을 “우울하고 초라하다”고 평가했다.
덴마크 모델은 새로운 유럽 표준이 될까
강경 이민 정책이 중도 좌파에게도 ‘선거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덴마크 사례는 많은 유럽 정치인이 주목하는 성공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장기적으로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영국의 움직임은 유럽 전반에 걸친 ‘이민 체제 재설계’ 흐름을 가속시키고 있으며, 향후 몇 년간 덴마크 모델이 유럽 정치 지형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BEST 뉴스
-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새로운 형사사법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주문했다.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경찰에 대해서는 외부 통제와 내부... -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16일 첫 한·중앙아 정상회의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잇달아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공급망과 인프라, 시장 확대를 비롯한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나선다. 오는 16일에는 5개국 정상이 함께하는 첫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
농지 전수조사에 커진 불안…정부 “투기와 농촌의 현실 구분하겠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 전수 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 [사진=농림수산식품부]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 농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 -
경기도, 장애인 자립지원주택에 ‘AI 자립비서’ 도입…안전·건강·일상생활 지원
▲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AI와 IoT를 활용해 안전·건강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AI 자립비서’ 사업을 10월부터 12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사진=경기도]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안전을 돕기 위해 인공지능(AI)과 ... -
우주에서 포착한 사우디 사막…모래언덕이 그려낸 ‘지구의 예술’
▲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 [사진=Jessica Meir x]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능선이 굽이치고, 능선을 따라 생긴 그림자가 대지 위에 독특한 무늬를 만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 -
사라지는 로힝야족의 마을, 폭력 피해 떠났지만 돌아갈 땅마저 잃는다
▲ UNHCR이 2026년 6월 공개한 콕스바자르 난민촌 항공사진 [사진=UNHCR] 미얀마에서 수십 년간 박해와 강제이주를 겪어온 로힝야족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살던 마을과 토지까지 사라지면서 향후 귀환할 수 있는 삶의 기반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