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콘월(Cornwall) 해안의 소도시 세인트 아이브스 중심에 자리한 팔레 드 당스(Palais de Danse)가 2026년 중·후반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한때 영화관이자 댄스홀이었던 이 건물은 1961년 영국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작가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가 매입해 자신의 두 번째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장소이다. 1975년 헵워스의 사망 이후 장기간 문을 닫고 있던 이 공간은 약 반세기 만에 예술 창작과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팔레 드 당스는 영국 문화유산 체계에서 등급 2(Grade II)로 등재된 역사적 건축물이다. 외관은 세인트 아이브스의 중심 상업 지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만, 내부에는 20세기 조각사의 중요한 장면이 축적되어 있다. 헵워스가 이 건물을 구입한 이유는 분명했다. 1960년대 들어 그녀의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이전 작업실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공공 조각 의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보다 넓고 높은 공간이 필요했고 옛 댄스홀은 그 요구를 충족시켰다.
이곳에서 제작된 대표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뉴욕 유엔 본부 앞에 설치된 단일 형태(Single Form)이다.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이 거대한 청동 조각은 헵워스 작업 세계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정확한 비례와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스튜디오 바닥에 격자를 그리고 스케일을 계산했는데, 이번 복원 과정에서 그 ‘그리드 바닥’이 재현되어 공개될 예정이다.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 존 루이스 빌딩 외벽에 설치된 날개 달린 형상(Winged Figure) 역시 팔레 드 당스와 깊이 연결된다. 이 작품의 원형은 건물 뒤편 야외 마당에서 제작되었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 작업 마당은 재개관 이후 방문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된다. 또한 관람자가 내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포 스퀘어, 실습 (Four Square, Walk Through) 역시 이곳에서 구체화된 후기 작업의 중요한 사례다. 팔레 드 당스는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헵워스가 조각의 물리적 규모와 공간 개념을 확장한 실험의 장이었다.
이번 복원 프로젝트는 영국의 건축사무소 아담 칸 건축사무소(Adam Khan Architects)가 맡았다. 설계의 핵심은 역사적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동시대 예술 활동이 가능한 유연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1층에는 헵워스의 도구와 재료, 석고 모형, 작업 흔적 등이 전시된다. 상당수는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자료들로,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이 아닌 ‘제작 과정’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2층의 24미터 길이 댄스홀은 이 건물의 상징적 공간이다. 스프링 구조의 메이플 바닥과 무대, 그리고 헵워스가 직접 디자인한 글래신 스크린이 복원된다. 이곳은 앞으로 커미션 전시, 설치 작업, 퍼포먼스, 강연 등 다층적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과거의 댄스홀이 동시대 예술 담론의 무대로 전환되는 셈이다.
길 건너편에는 이미 바바라 헵워스 박물관 및 조각 정원(Barbara Hepworth Museum and Sculpture Garden)이 운영 중이다. 이 미술관은 헵워스가 생전 거주하며 작업했던 트레윈 스튜디오를 보존한 공간으로 현재는 테이트(Tate)가 관리한다. 기존 미술관이 작가의 일상적 작업 환경과 조각 정원을 보여준다면, 팔레 드 당스는 그녀의 대형 프로젝트와 공공 조각 제작 과정을 조명하는 공간이 된다. 두 장소는 도보로 불과 몇 분 거리로 헵워스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세인트 아이브스는 20세기 중반 이후 영국 모더니즘 미술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팔레 드 당스의 재개관은 단순한 건물 복원을 넘어 도시의 예술적 정체성을 다시 활성화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공간은 앞으로 예술가 레지던시,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 청소년 교육, 학술 행사 등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반세기 동안 멈춰 있던 공간이 다시 열리면서 헵워스의 조각이 던졌던 질문인 형태와 공간, 내부와 외부, 개인적 작업과 공공적 기념비 사이의 긴장은 현재형의 담론으로 되돌아온다. 팔레 드 당스의 재개관은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이자 미래의 예술 실험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세인트 아이브스의 바닷바람 속에서 한 세기의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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