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과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비전’ 부문 선정작 23편을 공개했다. 신예 감독들의 도전적인 작품부터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온 감독들의 신작까지 폭넓게 포진하면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독립영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비전’은 한국과 아시아의 최신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부문으로, 지난해부터 한국과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독립영화의 장으로 새롭게 개편됐다. 올해는 ‘비전-한국’ 12편과 ‘비전-아시아’ 11편 등 모두 23편이 선정됐다. 다양한 세대와 국적의 영화인들이 참여해 아시아영화의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 주목해야 할 새로운 흐름까지 함께 보여줄 전망이다.
먼저 ‘비전-한국’에서는 신예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과 국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온 감독들의 신작이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김효미 감독의 장편 데뷔 애니메이션 <귀벌레>는 소설가를 꿈꾸는 인물의 성장 과정을 독특한 상상력과 그림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강에게>, <정말 먼 곳>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 박근영 감독은 <극장에 두고 온 것들>로 관객을 만난다.
신동민 감독의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닌>은 상실의 아픔을 외면해 온 이들이 치유와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를 담았고, <절해고도>로 주목받은 김미영 감독은 신작 <모종의 탐정>을 선보인다. 두 작품은 2026 아시아영화펀드(ACF) 장편독립극영화 후반작업지원펀드 선정작이기도 하다.
오세현 감독은 <베일러>를 통해 삶의 전환점에 선 30대 여성이 농촌에서 보내는 시간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박송열 감독은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에서 가족의 모습과 삶의 의미를 보다 넓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손현록 감독의 <새>는 연이어 발생하는 학생들의 추락사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긴장감을 더한다. 박홍민 감독은 <스페이스>를 통해 일상과 초현실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이어간다.
이 밖에도 신선 감독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우진 감독의 <우주의 흔적>, 정지혜 감독의 <풀문>, 김시진 감독의 장편 데뷔 애니메이션 <화곡사> 등이 ‘비전-한국’에 선정됐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여성, 사랑과 상실, 가족과 타인의 시선, 그리고 화장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 등 각 작품은 서로 다른 소재와 형식으로 인간의 삶과 내면을 탐색한다.
‘비전-아시아’에서는 베트남, 일본, 홍콩, 필리핀, 몽골, 이란, 태국, 인도,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와 삶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선정됐다.
베트남의 응우옌호앙디엡 감독은 <1982>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가는 영화감독의 여정을 통해 상처와 열정을 들여다본다. 일본의 구마모토 료헤이는 <노래가 끝난 후>를 통해 가족 관계 속에서 혼란을 겪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기를 그렸다.
홍콩의 이사벨라 람록힌 감독은 장편 데뷔작 <데드 엔드>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복동생을 통해 과거와 무의식 속 기억을 마주하게 되는 한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필리핀의 신예 감독 아빈 벨라르미노는 <리아>에서 음악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포크 펑크 뮤지션의 분투를 담았다.
몽골의 사히야 뱜바 감독은 <멈춰서다>를 통해 고립된 주유소에 이방인이 등장하면서 흔들리는 억압적 공간의 질서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이란의 마니 모가담 감독은 장편 데뷔작 <미몽>에서 불안과 억압이 공존하는 현실을 마술적 사실주의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태국의 인티라 차른뿌라와 펜시리 끌랑수린 공동감독의 <부아>는 혼혈 소녀의 성장과 아픔을 다루며, 인도의 사일레시 라트나쿠마르는 첫 장편 <셀비>를 통해 이주와 노동, 사랑과 연민이라는 삶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인도 감독 샤샹크 왈리아는 장편 데뷔작 <어둠 속의 새들>에서 영상미와 철학적 메시지를 결합했으며, 카자흐스탄의 다르한 툴레게노프 감독은 <탯줄>을 통해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본의 야자 다케노신 감독은 <환상의 불빛>에서 삶의 무게와 책임을 깨달아 가는 여정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비전’ 부문을 통해 작품 상영뿐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 독립영화인들의 성취를 조명하는 다양한 시상도 진행한다.
‘비전-아시아’에서는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 비슈케크국제영화제 중앙아시아영화상 등 모두 10개 부문의 상이 마련된다. ‘비전-한국’에서도 올해의 배우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CGV상, KBS독립영화상, 크리틱b상 등 9개 부문의 시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선정작은 한국과 아시아의 독립영화가 특정한 장르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상실과 성장에서 가족과 사회, 노동과 이주, 억압과 자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실과 감정을 새로운 영화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미 국제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들과 첫 장편에 도전하는 신예들이 함께 선정되면서 ‘비전’ 부문은 아시아 독립영화의 세대교체와 확장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부산시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 ‘비전’ 선정작들이 부산에서 첫선을 보이며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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