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남부 에도(Edo)주의 중심 도시 베닌 시티(Benin City)에 조성 중인 서아프리카 미술관(Museum of West African Art, MOWAA)은 당초 2025년 11월 개관을 목표로 했던 대형 문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개관을 앞두고 정치적 갈등과 문화재 소유권 문제에 휘말리며 계획이 지연된 상태다.
약 5년에 걸쳐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에도 주정부(Edo State Government) 등 국제 기관과 공공 파트너가 참여한 약 2,500만 달러(한화 약 360억 원) 규모의 문화 인프라 사업이다. 사업의 구상은 나이지리아 사업가이자 문화 후원가인 필립 이헤나초(Phillip Ihenacho)가 제안했으며, 베닌 왕국의 역사와 현대 서아프리카 미술을 동시에 다루는 새로운 문화 중심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MOWAA는 단일 미술관 건물이 아니라 도시 중심부에 조성되는 복합 문화 캠퍼스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연구, 전시, 교육, 공연, 예술 창작을 위한 다양한 건물과 공공 공간이 결합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현대 예술가와 학자, 문화 종사자들이 협력하고 활동하는 문화 생태계를 지향한다. 전통 예술과 공예, 그리고 동시대 창작 활동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베닌 브론즈와 문화재 귀환 논쟁의 중심 도시
베닌 시티가 국제 문화계의 관심을 받아온 이유는 이 도시가 바로 ‘베닌 브론즈(Benin Bronzes)’의 본래 고향이기 때문이다.
베닌 브론즈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아프리카 베닌 왕국에서 제작된 청동·황동 조각과 부조판, 의례용 조형물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1897년 영국의 군사 원정 이후 수천 점이 유럽과 북미 박물관으로 반출되었고, 이후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최근 독일과 영국, 미국의 여러 기관이 이 유물의 반환을 논의하거나 일부 반환을 시작하면서 베닌 시티에는 이를 수용할 문화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MOWAA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기관이었다.
그러나 2023년 나이지리아 정부의 대통령령은 반환되는 베닌 브론즈의 소유권을 국가가 아닌 베닌 왕국의 군주인 에우아레 2세(Oba Ewuare II)에게 귀속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왕실은 별도의 왕립 박물관을 통해 유물을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 결정은 MOWAA의 초기 구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연구와 보존을 위한 핵심 시설, MOWAA 연구소
MOWAA 캠퍼스의 중심 시설 가운데 하나는 MOWAA 연구소(MOWAA Institute)이다. 이 건물은 아프리카 전역의 기관과 전문가를 지원하는 연구, 보존, 문화유산 관리의 거점으로 계획되었다.
연구소는 약 4,500㎡ 규모의 흙벽돌 구조 건물로 설계되었으며, 건축 설계는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가 이끄는 아자예 어소시에이츠(Adjaye Associates)가 맡았다. 이 건물은 캠퍼스에서 가장 먼저 개관할 시설로 예정되어 있다.
연구소 내부에는 전시 갤러리와 보존·재료과학 실험실, 문화유산 연구를 위한 전문 시설이 들어선다. 또한 약 100석 규모의 강당과 세미나실이 마련되어 학술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최첨단 소장품 보관 및 보존 시설을 갖춘 이 연구소는 단순한 연구 공간을 넘어 지식 생산과 국제 협력의 중심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된다. MOWAA의 전시 프로그램과 학술 활동 역시 이 연구소를 기반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열대우림 정원과 공공 공간
캠퍼스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열대우림 정원(Rainforest Garden)이다.
이 정원에는 2,000그루 이상의 토종 나무가 심어질 예정이며, 식민지 시대의 삼림 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던 지역 식물 지식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한 조경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 공동체를 연결하는 문화적 장소로 기획되었다.
정원 곳곳에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site-specific works)이 배치될 예정이며, 방문객들은 자연 환경 속에서 예술을 경험하며 생태와 문화의 관계를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최근 세계 미술관들이 강조하는 환경·생태 기반 문화 공간 모델과도 맞닿아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첫 전시
MOWAA의 첫 전시는 ‘나이지리아의 상상: 귀향(Nigeria Imaginary: Homecoming)’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전시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나이지리아관 프로젝트를 확장한 형태로 회화·조각·영상·설치·텍스트 작업을 통해 ‘국가 정체성의 변화하는 개념’을 탐구한다.
식민지 이후 국가 형성과 디아스포라 경험, 현대 도시 문화의 변화를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전통 유산 중심의 박물관 서사를 넘어 동시대 아프리카 예술의 다양한 목소리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과 행정 분쟁으로 인해 개관 일정이 연기되면서 전시 역시 아직 관객을 맞이하지 못한 상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캠퍼스의 미래
MOWAA 프로젝트는 아직 1단계에 불과하다. 향후 2단계 개발 계획에서는 세 개의 주요 건물이 추가될 예정이다.
첫 번째는 국제 방문객과 연구자를 위한 부티크 호텔, 두 번째는 자연과 예술을 결합한 열대우림 갤러리, 그리고 세 번째는 공연과 공공 프로그램을 위한 공연 센터이다. 이 시설들이 완성되면 MOWAA 캠퍼스는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연구, 전시, 공연, 관광이 결합된 복합 문화지구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이 프로젝트는 문화재 반환 문제와 정치적 갈등, 토지 사용권 분쟁이라는 현실적 변수 속에 놓여 있다.
베닌 브론즈의 귀환이 단순한 문화재 반환이 아니라 누가 소유하고, 누가 전시하며, 누가 역사 서사를 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닌 시티에서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결국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넘어선다. 그것은 아프리카 문화유산의 미래, 그리고 탈식민 시대의 문화 제도가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지에 대한 중요한 실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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