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IEA)가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특히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와 천연가스 흐름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 글로벌 에너지 안보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IEA에 따르면 최근 군사 충돌로 인해 일부 상류 석유 생산 시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제한되면서 일부 기업들이 생산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제 석유 제품과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역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IEA는 세계 각국 정부와 협력해 이번 사태가 에너지 안보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 이후 유가·가스 가격 급등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월 5일까지 약 17% 상승했으며, 유럽 천연가스 기준 가격인 네덜란드 TTF는 60% 이상 급등했다. 특히 디젤과 항공유 등 일부 석유 제품 시장에서 가격 상승 압력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IEA는 전쟁 이전까지 세계 석유 시장이 상당한 공급 과잉 상태에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 2026년 글로벌 석유 공급량은 수요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은 빠르게 공급 부족 상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전 세계 관측 석유 재고는 2025년 기준 82억 배럴 이상으로,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IEA 회원국들은 12억 배럴 이상의 공공 비상 석유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정부 의무에 따른 산업 비축량 6억 배럴까지 포함하면 필요 시 시장에 상당한 물량을 추가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LNG 시장도 불안정
천연가스 시장 역시 긴장의 영향을 받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큰 충격을 받았던 글로벌 가스 시장은 최근 점차 균형을 되찾는 흐름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다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카타르의 라스 라판(Ras Laffan) LNG 시설이 공격 이후 생산 중단 상태에 들어가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시설은 2025년 기준 연간 LNG 1,120억 세제곱미터(bcm)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LNG 생산 단지다. 여기에 액화석유가스(LPG) 하루 30만 배럴, 콘덴세이트 하루 18만 배럴을 생산하는 핵심 에너지 허브이기도 하다.
IEA는 라스 라판 시설의 생산 감소가 장기화될 경우 LNG 공급 부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북반구 난방 시즌이 끝나면서 저장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몇 달 동안 LNG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호르무즈 해협’
이번 사태의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 해협은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좁은 해상 통로로,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에너지 수송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 바레인, 이란 등 주요 산유국에서 생산된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부분 이 해협을 통해 수출된다.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약 2천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해상 석유 교역량의 약 25%에 해당한다.
또한 같은 해 기준 약 1,100억 세제곱미터(bcm)의 LNG가 이 해협을 통해 운송됐다. 이는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 수준이다. 카타르 LNG 수출량의 약 93%, UAE LNG 수출량의 약 96%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운송된다.
대체 수송로 제한적
문제는 이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대체 수송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송 능력은 하루 약 350만~55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의 수출 물량을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2025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와 석유 제품의 약 80%가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LNG 역시 약 90%가 아시아로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IEA는 해협을 통한 운송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압력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카타르나 UAE와 장기 계약을 맺은 국가들이 현물 LNG 시장에 의존하게 될 경우 글로벌 가스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IEA는 “현재까지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은 상당한 재고와 비축 물량 덕분에 단기적인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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