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중심부 블룸즈버리(Bloomsbury)에 자리한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1753년 의사이자 수집가였던 한스 슬론(Hans Sloane)의 방대한 개인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된 이 기관은 1759년 일반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공공 박물관”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현재 영국박물관은 약 800만 점에 이르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고대 문명에서 현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의 유산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점에서 ‘세계 문명의 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박물관은 “제국의 박물관인가, 세계의 박물관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온 기관이기도 하다.
제국의 수집품에서 시작된 세계 박물관
영국박물관의 상징적인 유물 가운데 하나는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이다.
기원전 196년에 제작된 이 석비에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가 함께 새겨져 있으며, 이를 통해 19세기 학자들이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대표 소장품은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Parthenon Marbles)이다.
이 조각들은 원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작품으로, 19세기 초 영국 외교관 토머스 브루스, 제7대 엘긴 백작(Thomas Bruce, 7th Earl of Elgin)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받아 영국으로 옮긴 뒤 박물관에 기증했다.
또한 서아프리카 베닌 왕국에서 제작된 베닌 브론즈(Benin Bronzes) 역시 이 박물관의 중요한 컬렉션이다.
1897년 영국 군대가 베닌 왕국을 침공한 이후 수천 점의 유물이 유럽과 북미로 반출되었으며,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이처럼 영국박물관의 많은 소장품은 18~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시대의 탐험, 수집, 식민지 확장 과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반환 논쟁 속에 선 세계 문화 기관
21세기 들어 영국박물관은 점점 더 강한 문화재 반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 정부가 오랫동안 반환을 요구해온 파르테논 조각이다.
그리스는 이 유물들이 원래 건축물의 일부였기 때문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Acropolis Museum)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나이지리아 정부와 여러 국제 기관은 베닌 브론즈의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독일과 일부 유럽 박물관이 최근 이 유물의 반환을 시작하면서, 영국박물관 역시 향후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국제 문화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영국박물관 측은 오랫동안 “세계 문화유산을 한 공간에서 비교하며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박물관(universal museum)’ 모델”을 강조해 왔다.
다양한 문명이 서로 연결된 역사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국제적 컬렉션이 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동시에 식민지 시대의 문화 수집 구조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박물관 모델
영국박물관은 최근 박물관 공간 자체를 재구성하는 장기 마스터플랜(Masterplan)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노후화된 전시 공간을 현대화하고, 연구·보존 시설을 확장하며, 방문객 동선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2000년에 개관한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공간은 기존 도서관 건물을 중심으로 거대한 유리 돔을 덮은 구조로, 박물관을 하나의 공공 광장처럼 경험하도록 만든다.
최근 발표된 계획에서는 전시 갤러리 재배치와 디지털 아카이브 확대, 국제 연구 협력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지식 생산과 글로벌 문화 협력의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역사를 전시하는가’라는 질문
영국박물관은 오늘날에도 매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세계적 문화 기관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박물관은 현대 문화 정책이 마주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누가 전시하며, 누가 그 이야기를 설명할 것인가?
런던 블룸즈버리에 자리한 이 오래된 박물관은 여전히 그 질문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탈식민 시대 문화 제도가 어떤 형태로 재구성될 것인가라는 더 큰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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