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림 속에서 축적되는 삶… ‘인스턴트’한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이야기
정진운, 필독 작가의 《The Instant: Fireworks Bloom》오프닝이 3월 28일 서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음악과 춤, 그리고 시각 예술이라는 흐름 속에서 유사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두 작가의 시간을 한 공간에 펼쳐낸 자리로, ‘순간(Instant)’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청춘과 삶의 과정을 조명한다.
오프닝은 이날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진행됐으며, 두 작가가 함께하는 라이브 드로잉이 마련돼 관람객들이 작업의 과정과 예술적 호흡을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순간은 불꽃처럼 발생하고, 그 이미지는 시간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짧고 강렬하게 터졌다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들이 단순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하나의 존재를 형성해간다는 인식이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정체성을 쌓아가는 필독 작가의 작품 언어
필독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이미지의 조합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기록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하나의 시각 언어로 구조화한다.
그의 작업에서 발자국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댄서로서 살아온 시간과 움직임의 축적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자신을 구성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신체를 통해 경험한 시간이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그의 회화는 ‘몸의 기억이 시각화된 결과물’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숫자 ‘90’은 중요한 개념적 장치로 등장한다. 완성에 도달하기 직전의 상태, 혹은 아직 결핍을 품고 있는 경계로서의 숫자다. 이는 청춘이 지닌 불완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상징하며, 임계에 다다른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천사 역시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창작 행위에 대한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마치 천사의 날개짓과도 같다는 감각, 즉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움직임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환원한 것이다.
꽃의 이미지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상태와 변화,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피어나고 사라지는 순간을 상징한다. 지나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겨 놓은 발자취 위에 꽃이 피어나길 희망하는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정진운 작가가 던지는 질문
정진운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에너지 안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대칭을 이루면서도 완전히 겹치지 않는 시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존재하는 감정과 관계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그의 사진 작업은 오랜 기다림 끝에 포착된 찰나의 순간들로 채워된다. 이 순간들이 모여 현실에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장면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탄생한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신호등의 빨간불과 초록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결코 교차하지 않는 열차의 찰나가 병치되며, 시간과 감정의 간극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작품은 완성된 결과로서 언제나 가장 정제된 형태로 제시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밀도와 불완전한 상태,
‘보이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층위에 대해 작가는 메세지를 던진다.
정진운 작가는 "'모든 아트는 절반의 사실만 내포하고 있다'는 말처럼, 화려한 결과 이면에는 간절하고 불안하고 위축되는 평범한 순간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의 주제인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도 강렬하지만 10초도 안 돼 금방 꺼져버리는 인스턴트(instant)한 시간이다. '화려함'과 '짧은 생명력'이라는 양면성이 공존하듯, 인스턴트한 순간들 또한 나쁘고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만들어가는 삶의 일부가 되고, 그 자체가 예술적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의 의미를 전했다.
불완전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선
다섯 폭의 각각 다른 사진들이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가운데 존재하는 무지개를 향해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나타낸다. 무지개는 꿈과 희망을 상징하며, 각각의 사진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감정의 단면을 담아낸다.
작가는 균일하지 않은 삶의 리듬을 사진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어느 때는 선명하기도 하고 흐릿하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크게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같은 순간들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불균형한 시간의 밀도와 감정의 차이를 사진 속에 서로 다른 폭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정진운 작가는 본래 명확하게 떨어지는 각과 선을 선호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질서를 의도적으로 벗어나 서로 다른 선과 방향들이 하나의 능선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이 작업은 단절된 장면들처럼 보이는 시간들이 실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균일하지 않은 성장과 어긋난 리듬 속에서도, 꿈이 있는 삶은 일정한 방향성을 잃지 않은 채 축적되고 있다는 희망을 조용히 드러낸다.
정진운, 필독의 이번 전시는 ‘순간’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찰나가 아니라, 축적되어 삶을 형성하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가볍게 소비되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두 작가의 관점을 따라가다보면, 불완전했으나 열정으로 점철된 청춘의 시간에 꽃 한 송이 심어주고 싶은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뇌하는 두 작가의 작업은 관람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나의 인스턴트한 시간들은 훗날 어떻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꽃 피워질까'
이번 전시를 통해 스스로에게 희망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유해보는 여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진운, 필독 작가의 《The Instant: Fireworks Bloom》은 오는 5월 3일까지 서보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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