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준수를 넘어 신뢰의 시스템으로 진화한 한국형 컴플라이언스
지난 칼럼들에서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의 중요성을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시선을 국내로 돌려 대한민국 기업 현장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Compliance Program)'의 발자취를 살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CP는 단순한 규제 회피 수단이 아니다. 경제 성장기의 뼈아픈 부작용을 극복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추기 위해 우리 기업과 사회가 치열하게 고민해 온 '신뢰 회복의 역사' 그 자체다.
한국형 CP의 탄생: 호주 표준에서 시작된 자율준수의 싹
한국의 CP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컴플라이언스 표준인 'AS/NZ 3806'을 모태로 삼아,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주도하에 탄생했다,
당시 한국의 기업 환경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웠지만, 그 이면에는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연일 터져 나오는 기업의 비리와 윤리적 스캔들에 대한 국민의 사회적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이 스스로 법규를 준수하고 윤리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표준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규범'을 제정 및 선포하게 된다.
부침과 진화: 혜택 폐지에서 법제화까지
도입 이후 CP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6년 CP 등급평가 제도가 본격 도입되었으나, 일부 기업들이 이를 위법 행위에 대한 '과징금 감경 목적'으로만 악용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급기야 2014년에는 국정감사 이슈로 불거지며 과징금 감경 인센티브가 전면 폐지되는 뼈아픈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는 제도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2019년에는 기존 7대 핵심 요소에 '기준과 절차 마련 및 시행'을 추가하여 8대 요소로 확대 개편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6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CP 제도가 명실상부하게 법제화되었으며, 과징금 감경 혜택 등 유인 부여의 법적 근거가 부활했다. 이어 2025년에는 CP 등급평가를 우수기업 지정제(AAA, AA, A) 3단계로 전면 개편하며 제도의 실효성과 신뢰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서류에서 문화로: CP 패러다임의 전환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CP를 대하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다. 과거의 CP가 규정 문서의 구비, 교육 이수율 채우기, 감사 체크리스트 확인 등 이른바 '정량적 관리'와 '보여주기식 행정'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기업 문화 기반의 CP'가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2021년 도입된 글로벌 준법경영 국제표준인 ISO 37301 역시 리스크 기반 접근과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조직 맥락의 이해를 필수 전제로 삼고 있다, 이는 규범 준수가 단순히 법무팀이나 감사팀만의 고립된 업무가 아니라, 인사, 재무, 구매, 영업 등 기업 내 모든 조직의 일상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신호체계(Signal system)'로 정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CP는 더 이상 규제 당국을 위한 방어선이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이해관계자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ESG 공시 의무화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 CP는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넘어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생존 무기가 되었다. 기업 스스로 준법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투명하게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CP가 앞으로 완성해 나가야 할 진정한 기업의 모습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용석광 (Yong Seok Kwang)
세종대학교 경영학과에서 ESG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경영학적 통찰과 실무 전략으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ESG 및 준법경영 전문가이다. 현재 ESGi 대표이사이자 대학의 겸임교수와 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다수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위원으로서 윤리·인권 경영 체계 확립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무 현장의 핵심 지침을 담은 《Compliance 공정거래 CP&ISO 37301 실무가이드》, 《ESG와 윤리·준법경영.ZIP》, 그리고 《ESG 경영의 근간 컴플라이언스 솔루션.ZIP》 등이 있다.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기업들이 규범 준수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영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실천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BEST 뉴스
-
[윤재은 칼럼] 집은 늘어나는데, 왜 내 집은 더 멀어지는가?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택지 개발과 재건축·재개발, 도시정비 등을 통해 주택공급을 최대한 신속하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총리실이 관련 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대통령도 매주 보고받으며 구체적인 사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사진=Ai]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업이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안전·윤리·탄소배출 관리 수준을 확인하면서 중소기업에도 ESG 대응이 실... -
[서정태의 ESG 현장클리닉③] 녹색인증과 녹색제품 인증, 정확히 구분해야 공공 조달 판로가 열린다.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서정태, Ai]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국가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 조달 시장에서도 에너지 절감, 온실가스 감축, 자원순환 및 환경오염 저감 성능을 갖춘 제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⑯]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농지가 사라지면 식량안보도 무너진다 [사진=Ai, 남재철] 식량안보가 국가안보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농지는 더 이상 단순한 토지나 생산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략자산으로 인식...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⑲] 찬 이슬이 알려주는 농업의 시간, 한로(寒露)와 기후변화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찬 이슬이 알려주는 농업의 시간, 한로(寒露)와 기후변화 [사진=남재철, Ai] 24절기 가운데 열일곱 번째인 한로(寒露)가 다가왔다. ...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⑱] 추미애 도정 100일, 경기도의 미래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 추미애 도정 100일, 경기도의 미래전략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남재철, Ai] 인수위의 정책 구상이 도정의 실행전략으로 이어져야 지난 6월, 추미애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경기준비위원회)의 ‘에너지 순환경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
전체댓글 0
NEWS TOP 5
-
1[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㉙ CP 등급평가 기준과 주요 지표: 100점 만점 속 고득점 전략
-
2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㉘ CP 등급평가 절차와 제도 개편: 혜택을 쟁취하는 4단계 실무 로드맵
-
3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㉚ CP 등급평가 실적보고서 작성 Tip: 평가위원의 눈을 사로잡는 합격 노하우
-
4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㉗ CP 도입을 위한 8대 핵심 요소: 형식적 껍데기를 깨부수는 진짜 뼈대
-
5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㉛ CP 등급평가 현장·대면평가 대응: 심사위원의 질의를 압도하는 실증 전략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