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정을 넘어 문화로… 글로벌 기업이 증명한 컴플라이언스의 본질
지난주 한국형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시야를 넓혀 글로벌 무대로 향해보자. 다국적 거래가 일상화된 오늘날, 기업은 자국의 법만 지킨다고 해서 절대 안전하지 않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이제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통 규범이자 필수 생존 전략이다. 주요 선진국과 국제적 기업들은 일찍부터 CP를 도입해 리스크를 관리해 왔으며, 그 방식은 각국의 법적·문화적 환경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미국: 문서가 아닌 ‘소통’으로 증명하라
미국은 컴플라이언스의 모국이자 CP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국가다. 미국 기업들은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ederal Sentencing Guidelines)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컴플라이언스 부서를 두고 리스크 평가와 내부감사를 강력하게 시행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 법무부(DOJ)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의 CP 실효성을 판단할 때 ‘내부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핵심 열쇠로 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다. 2012년 모건스탠리는 중국 내 고위 임원의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이례적으로 미국 당국으로부터 기소유예(Declination) 결정을 받았다. 회사가 해당 임원에게 최소 35건 이상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관련 리마인드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달했고, 매년 윤리강령 준수 서약을 받는 등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당국은 이를 ‘예외적으로 우수한 사례’로 인정했다. 이는 컴플라이언스가 일방적인 교육을 넘어, 짧고 반복적인 메시지를 통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될 때 비로소 임직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영국: 법률과 윤리의 조화를 통한 도덕적 회생
영국은 강력한 뇌물방지법(Bribery Act 2010)을 통해 기업에 부패 예방을 위한 ‘적절한 절차(Adequate procedures)’를 요구한다. 영국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윤리적 정체성을 설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금융그룹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는 과거 제재 위반 사건 이후, ‘Do the Right Thing’이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전 세계 직원의 행동 기준을 표준화했다. 특히 각 지점장에게 컴플라이언스 교육의 직접적인 책임을 부여하여 윤리 책임을 수평적으로 내재화하는 데 성공했다.
항공기 엔진 제조기업 롤스로이스(Rolls-Royce)의 사례도 인상적이다. 대규모 뇌물 스캔들로 막대한 벌금을 낸 이후, 이들은 CEO 직속의 독립적인 윤리 및 컴플라이언스 위원회를 신설했다. 또한 하도급업체와 협력사까지 윤리 평가를 적용하고, 내부고발자 보호(Speak-Up)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롤스로이스는 이 과정을 ‘기업의 도덕적 회생(Moral Rehabilitation)’이라 명명하며, 현재는 신뢰받는 윤리 중심 기업으로 거듭났다.
호주와 한국: 글로벌 표준과의 조화
호주는 기업이 법적 준수와 윤리적 책임을 다하도록 돕는 ‘AS/NZ 3806’ 표준을 통해 CP를 고도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공급망 관리와 고객 서비스 영역에서 엄격한 윤리 기준을 적용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CP 역시 이 호주 표준과 글로벌 규범준수 국제표준인 ISO 37301을 모태로 삼아 공정거래법 중심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최근 한국의 주요 이차전지 제조기업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윤리적 경영을 기업 문화의 핵심으로 삼고 철저한 CP를 운영하며 국제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는 조직 문화의 문제다."
주요 국가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CP는 단순히 규제 당국에 보여주기 위해 규정 문서를 만드는 요식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윤리적 판단을 체화하도록 돕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며, 외부의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조직을 지켜내는 가장 튼튼한 방어선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컴플라이언스를 법적 제약이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용석광 (Yong Seok Kwang)
세종대학교 경영학과에서 ESG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경영학적 통찰과 실무 전략으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ESG 및 준법경영 전문가이다. 현재 ESGi 대표이사이자 대학의 겸임교수와 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다수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위원으로서 윤리·인권 경영 체계 확립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무 현장의 핵심 지침을 담은 《Compliance 공정거래 CP&ISO 37301 실무가이드》, 《ESG와 윤리·준법경영.ZIP》, 그리고 《ESG 경영의 근간 컴플라이언스 솔루션.ZIP》 등이 있다.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기업들이 규범 준수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영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실천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BEST 뉴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⑨]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 이제는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폭염은 소리없는 살인자 [사진=Ai, 남재철] 올여름도 어김없이 폭염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기록적인 고온과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는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국, ... -
[기고] 배우 유준상, ESG를 공부하다
[편집자주] 이 글은 배우 유준상 님이 제5기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을 수료한 뒤, ESG에 대한 배움과 생각을 직접 작성해 ESG코리아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 유준상 배우 [사진출처=숨우주예술연구소] 나는 배우다. 오랜 시간 ... -
[윤재은 칼럼] 지금의 여름이, 인류가 경험한 가장 차가운 여름일지도 모른다
▲ 기사의 이해을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올여름, 우리는 40℃를 넘나드는 폭염을 경험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온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에어컨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고, 밤에도 식지 않는 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㉑ 공정거래법의 주요 내용과 발전 과정: 13개 법률로 완성된 공정 경제의 인프라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공정거래법의 주요 내용과 발전 과정: 13개 법률로 완성된 공정 경제의 인프라 [사진=Ai] 대한민국 기업 현장에서 '컴플라이언스'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뼈대가 바로 공정거래법이다. 정식 명칭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인 ...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⑩] 기후가 휘두른 채찍, 복합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 기후가 휘두른 채찍, 복합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사진=남재철, Ai] 올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한 지역에서 ... -
[서평] 탄소 규제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 [서재익 박사 신간] 『더 약탈당하기 전에 읽어라』 [사진=남재철, 온프북스 & FN TODAY] 서재익 박사의 『더 약탈당하기 전에 읽어라』는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이다. ‘약탈’이라는 단어는 전쟁이나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약탈은 총과 군함...
전체댓글 0
NEWS TOP 5
-
1[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㉑ 공정거래법의 주요 내용과 발전 과정: 13개 법률로 완성된 공정 경제의 인프라
-
2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㉒ 변화하는 시장과 진화하는 규제: 최근 공정거래법의 주요 이슈와 트렌드
-
3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㉓ 기업의 5대 이해관계자와 공정거래법: 상생과 신뢰의 네트워크 설계
-
4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㉔ 산업별 공정거래법 위반 TOP 8: 우리 업종의 급소는 어디인가
-
5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㉕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
방사능 연구에 바친 삶… 과학계의 거장 ‘마리 퀴리’를 기리며
과학 계정 ‘월드 오브 사이언스(World of Science)’가 7일 공식 X를 통해 19... -
스크린 넘어 세계를 보살피는 연기파 배우, ‘UN 평화대사’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의 삶과 헌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이자 인도주의 운동가인 샤를리즈 테론(Cha...
오피니언
more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⑪] 폭염의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시원한 희망을 전하다
올여름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은 단순히 불쾌한 더위...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㉕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사고가 터진 후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 약방문' 식의 대응은 오랜 기간 ...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㉔ 산업별 공정거래법 위반 TOP 8: 우리 업종의 급소는 어디인가
공정거래법은 대한민국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기본 규범이지만, 실제 현장...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⑩] 기후가 휘두른 채찍, 복합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올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유...
기획 / 탐방
more +-
제5회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 홋카이도서 ESG 탐방 프로그램 진행
제5회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이 지난 14일부터 17일... -
[인공지능 문명 리포트 ⑥] 기계는 왜 거짓말을 할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
[기계가 일하는 세상 ⑩] 24시간 멈추지 않는 무인 생산라인…공장은 잠들지 않는다
공장은 오랫동안 인간 노동의 상징이었다. 거대한 기계 소리, 반복되는 조립 ... -
[ESG탐방]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전시하다… 상하이 도시계획전시관이 보여주는 도시 운영의 방향
상하이 도시계획전시관(Shanghai Urban Planning Exhibition Center)은 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