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SRD·CSDDD·CBAM 시대, 기업의 대응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과거 기업들에게 ESG와 컴플라이언스는 '하면 좋은 것' 혹은 '보고서를 위한 치장' 정도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를 외면하는 기업은 공급망에서 퇴출당하거나 투자자, 금융기관, 거래처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현실적인 불이익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국가의 기업들에게 글로벌 규제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한 거대한 규제의 파도는 이미 기업의 문턱을 넘어 경영의 핵심을 타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크게 'ESG 정보 공시 의무화*와 '공급망 실사 의무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율적 보고에서 '법적 의무화'로 전환된 ESG 공시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이 2023년부터 시행되면서 5만 개 이상의 기업이 ESG 정보 공시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배출량 정보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이제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는 투명하게 측정되고 외부의 제3자 검증을 받아야 하는 '의무 데이터'가 되었다.
둘째, 기업 본사를 넘어 2·3차 협력사까지 뻗어가는 '공급망 실사(Due Diligence)'
독일은 2023년부터 3,000명 이상 기업에 적용하던 '공급망 실사법'을 2024년 1,000명 이상 기업으로 대폭 확대했으며, 프랑스는 '기업 의무 실사법(Loi de Vigilance)'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인권과 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감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파급력이 큰 것은 EU 차원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다. 한국의 대(對)EU 수출 의존도는 9.1%(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에 달하며, 2027년부터 이 실사 지침이 한국 기업들에 본격적으로 역외 적용될 예정이다. 이는 관세 장벽을 넘어선 새로운 시장진입 장벽으로, 1차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2·3차 협력업체까지 인권과 환경 기준을 준수하지 않으면 거래 단절과 심각한 평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글로벌 자본을 움직이는 '투자자들의 거센 압력'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등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기업이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투자를 제한하는 방침을 노골화하고 있다. MSCI, FTSE4Good 등 글로벌 평가기관의 지표가 투자의 핵심 잣대가 되며, 한국의 국민연금 역시 ESG 요소를 고려한 책임 투자를 강하게 확대하고 있다. 자본의 흐름이 곧 'ESG와 컴플라이언스 성과'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러한 국제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수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자체에만 에너지를 쏟거나, 대응 부서를 따로 신설하여 업무를 떠넘기는 실수를 범한다. 법무팀은 컴플라이언스를, 환경팀은 탄소배출을, 인사팀은 인권을 각자 관리하는 파편화된 대응으로는 절대 이 파도를 넘을 수 없다.
해답은 '통합 매니지먼트 체계 구축'과 '경영의 내재화(Internalization)'에 있다. ESG와 컴플라이언스는 별도의 보고서가 아니라, 임직원의 의사결정 과정 전체를 바꾸는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구매 부서가 협력사와 계약할 때 단가뿐만 아니라 '노동권 보장 여부'를 묻고, 신제품 기획 시 환경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인사팀의 평가 체계에 윤리적 행동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ESG와 컴플라이언스가 진정으로 경영에 통합된 상태다.
"Compliance는 윤리의 최저선이고, ESG는 기업 존재 이유다. 이 둘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제 기업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외부의 압력에 떠밀려 서류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전사적 의사결정 구조를 진화시키고 있는가? 거대한 글로벌 규제 환경 속에서 ESG와 컴플라이언스를 비즈니스의 핵심 인프라로 결합해 내는 기업만이 다가올 미래 시장에서 신뢰와 생존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ㅣ 용석광 (Yong Seok Kwang)
세종대학교 경영학과에서 ESG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경영학적 통찰과 실무 전략으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ESG 및 준법경영 전문가이다. 현재 ESGi 대표이사이자 대학의 겸임교수와 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다수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문위원으로서 윤리·인권 경영 체계 확립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무 현장의 핵심 지침을 담은 《Compliance 공정거래 CP&ISO 37301 실무가이드》, 《ESG와 윤리·준법경영.ZIP》, 그리고 《ESG 경영의 근간 컴플라이언스 솔루션.ZIP》 등이 있다.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기업들이 규범 준수를 넘어 지속가능한 경영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실천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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