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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지우는 인류의 기억…우크라이나 문화유산이 보내는 경고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6.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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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성모승천대성당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 [사진=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Ukraine 영상캡쳐]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기억과 문명의 흔적까지 무너뜨린다. 최근 러시아의 대규모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 수도원(Kyiv Pechersk Lavra Monastery)이 피해를 입으면서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전쟁이 남기는 또 다른 상처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재는 단순한 건축물이나 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 역사적 경험을 현재와 미래 세대가 인식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지난 15일 러시아군은 미사일과 드론 수백 기를 동원해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인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의 성모승천대성당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종교시설과 역사 건축물, 문화시설 등이 잇따라 피해를 입었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공격으로 수도원 내 성당 지붕과 일부 구조물이 훼손됐으며, 우크라이나 문화계는 이를 단순한 전쟁 피해가 아닌 "국가의 역사와 정신을 겨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11세기에 세워진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는 동방정교회의 대표적 성지이자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신앙과 예술, 건축 기술,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으며,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는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흔적을 통해 인류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유적과 유물은 한 국가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가치 있는 자산이다.


유로뉴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번 공격을 두고 "기독교 문화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문화유산 공격 의혹을 부인하며 피해가 우크라이나 방공망의 오작동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장에서 러시아제 게란-2(Geran-2) 드론 잔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책임 공방은 이어지고 있지만, 전쟁이 문화유산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은 분명해 보인다.


유네스코는 이번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국제인도법과 1954년 헤이그 협약(Hagu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Cultural Property in the Event of Armed Conflict)의 준수를 촉구했다. 이 협약은 무력 충돌 상황에서 문화재 보호를 의무화하고 의도적인 공격을 금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협약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올해까지 우크라이나에서 공식적으로 피해가 확인된 문화유산은 500여 곳을 넘어섰다. 종교시설과 역사 건축물, 박물관, 도서관, 기념물, 고고학 유적 등이 포함된다. 이는 문화재 파괴가 단순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전쟁이 지속될수록 인류의 역사적 자산이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문화재의 가치가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문화유산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이해하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역사적 교훈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어느 시대의 건축물과 유물에는 당시 사람들의 기술 수준과 미적 감각, 신념과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따라서 문화재가 파괴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시설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해 온 경험과 기억의 일부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문화유산 보호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성 촬영과 3차원 디지털 기록을 통한 문화재 보존, 국제기구의 긴급 복원 지원, 문화재 공격에 대한 전쟁범죄 규정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는 단지 과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역사의 흔적을 통해 인간 문명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전쟁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기는 가장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는 역사를 증언하던 문화유산의 침묵일지도 모른다. 문화재는 한 민족의 기억을 넘어 인류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할 자산이며, 그 안에는 우리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소중한 흔적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전쟁 속 문화유산 보호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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