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는 때로 전쟁의 승패보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의해 움직인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목격하고 있다. 하나는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촉발한 중동 위기다.
그리고 이 두 전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장 많은 전략적 이익을 얻고 있는 인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거론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만 해도 푸틴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고립된 침략자'였다. 미국과 유럽은 전례 없는 경제 제재를 가했고, 서방 언론은 러시아 경제의 붕괴 가능성을 전망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은 확대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오히려 결속을 강화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의 패배는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불안정해지자 워싱턴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분산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방어와 중동 내 미군 보호, 호르무즈 해협 안정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 이상 유일한 안보 현안이 아니게 됐다.
푸틴 대통령이 얻은 첫 번째 이익은 바로 '시간'이다.
현대전에서 시간은 곧 자원이다.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무기와 외교적 관심, 정치적 결단은 무한하지 않다. 미국 의회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를 둘러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고, 유럽 각국에서도 물가 상승과 재정 부담 속에 전쟁 지속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푸틴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셈이다.
두 번째 이익은 에너지다.
중동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출렁인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에 예상치 못한 수익을 안겨준다.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등 비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출망을 구축해 왔다. 유가 상승은 러시아 전쟁경제의 숨통을 틔우고 군수 생산을 지속할 재원을 마련해준다.
전쟁이 전쟁을 먹여 살리는 역설이다.
세 번째는 외교적 공간의 확대다.
국제사회는 위기가 중첩될수록 '관리 가능한 악역'을 필요로 한다. 러시아는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강대국이다. 한때 국제무대에서 배제의 대상이었던 푸틴 대통령은 어느새 중동 문제 해결에 필요한 협상 파트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러시아의 완전한 복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노동력 부족, 군수산업 중심의 왜곡된 성장, 인명 손실에 따른 사회적 부담은 점점 누적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격은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전쟁의 비용은 러시아 국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푸틴이 얻은 이익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승리가 아니다.
그가 확보한 것은 영토의 확장보다 '국제사회의 집중력 분산'이다. 세계의 시선이 중동으로 향하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뉴스의 첫머리에서 밀려났고, 러시아는 버틸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과 이긴다는 것은 다르다.
20세기의 냉전은 군사력의 경쟁이었지만, 21세기의 전쟁은 피로의 경쟁이기도 하다. 누가 더 오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좌우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 그 싸움을 하고 있다.
세계가 또 다른 위기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는 조용히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다만 그 시간이 러시아 재건의 시간이 될지, 아니면 쇠퇴를 늦추는 유예기간으로 기록될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전쟁이 끝날 때가 아니라, 전쟁에 익숙해질 때라는 사실이다. 세계가 우크라이나의 포성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푸틴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시간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
BEST 뉴스
-
국민 10명 중 4명 토지 보유… 개인 토지소유자 2012만 명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약 40%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개인 토지소유자는 2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토지 보유 면적은 6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말 ... -
문체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패러게임' 준비단 출범…선수단 안전·편의 지원 본격화
▲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공식 로고 [사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9월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과 아시안 패러게임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선수단과 대회 관람객의 안전 및 편의를 지원하기 위해 관계기관 합동 준비단을 ... -
5억3900만 년 기후의 비밀 풀었다… “지구는 스스로 온도를 조절해 왔다”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gemini 생성이미지] 지구는 지난 5억39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초온난기를 반복하면서도 전체 평균기온을 일정 범위 안에서 유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암석 속에 남겨진 화학적 흔적과 첨단 기후모델을 결합해... -
서울시-메가MGC커피, 커피박 재활용 활성화 협약
▲ 왼쪽부터) 이호민 메가커피 CMO(chief marketing officer), 윤재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 [사진=서울시] 서울시가 카페에서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커피를 추출한 뒤 남는 부산물)의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프랜차이즈 업계와 손을 잡았다. 서울시는 지난 7월 30일 ... -
상반기 신규 등록 차량 23%가 전기차…친환경차 395만 대 돌파
▲ 충전중인 전기차 [사진=ESG코리아뉴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신규 등록 자동차 4대 가운데 1대에 가까운 차량이 전기차였으며, 친환경차 누적 등록 대수는 처음으로 395만 대를 넘어섰다. ... -
지단, 프랑스 축구 새 사령탑 선임…한국은 감독 선임 논란에 청문회까지
▲ 프랑스축구연맹(FFF)이 프랑스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지네딘 지단을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공식 선임했다. [사진=Pinterest] 프랑스축구연맹(FFF)이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지네딘 지단을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으로 공식 선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
방사능 연구에 바친 삶… 과학계의 거장 ‘마리 퀴리’를 기리며
과학 계정 ‘월드 오브 사이언스(World of Science)’가 7일 공식 X를 통해 19... -
스크린 넘어 세계를 보살피는 연기파 배우, ‘UN 평화대사’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의 삶과 헌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이자 인도주의 운동가인 샤를리즈 테론(Cha...
오피니언
more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⑪] 폭염의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시원한 희망을 전하다
올여름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은 단순히 불쾌한 더위...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㉕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사고가 터진 후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 약방문' 식의 대응은 오랜 기간 ...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㉔ 산업별 공정거래법 위반 TOP 8: 우리 업종의 급소는 어디인가
공정거래법은 대한민국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기본 규범이지만, 실제 현장... -
[남재철의 기후&식량안보⑩] 기후가 휘두른 채찍, 복합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올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고 있다. 유...
기획 / 탐방
more +-
제5회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 홋카이도서 ESG 탐방 프로그램 진행
제5회 한국ESG경영 최고위과정이 지난 14일부터 17일... -
[인공지능 문명 리포트 ⑥] 기계는 왜 거짓말을 할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
[기계가 일하는 세상 ⑩] 24시간 멈추지 않는 무인 생산라인…공장은 잠들지 않는다
공장은 오랫동안 인간 노동의 상징이었다. 거대한 기계 소리, 반복되는 조립 ... -
[ESG탐방]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전시하다… 상하이 도시계획전시관이 보여주는 도시 운영의 방향
상하이 도시계획전시관(Shanghai Urban Planning Exhibition Center)은 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