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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넘치는데 연료는 없다"…베네수엘라 대지진, 무너진 국가 시스템이 참사 키웠다

  • 유연정 기자
  • 입력 2026.07.0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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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대지진으로 무너진 잔해와 구조를 하는 사람들 [사진=MP MIKO POGAY Facebook]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대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생존자 구조 작업은 여전히 심각한 난항을 겪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재난이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장기간 누적된 국가 시스템의 붕괴가 만들어낸 '인재(人災)'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CNN과 AP통신,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라과이라(La Guaira) 지역에서는 정부가 보유한 굴착기와 중장비가 현장에 배치돼 있으면서도 연료 부족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구조대와 주민들은 결국 삽과 곡괭이, 심지어 맨손으로 콘크리트 잔해를 파헤치며 가족과 이웃을 찾고 있다.


현장에서는 "굴착기는 있지만 기름이 없어 움직일 수 없다"는 구조 관계자의 말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에서 연료 부족 때문에 구조 작업이 멈춰선 상황은 국제사회의 충격을 사고 있다.


구조보다 먼저 무너진 국가 기능


외신들은 이번 참사가 단순히 지진 피해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경제난과 국가 기반시설 붕괴, 행정 기능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치분석가 카르멘 베아트리스 페르난데스는 "국가는 국민 보호보다 권력 유지와 선전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이번 재난은 국가가 기본적인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피해 지역에서는 구조 장비뿐 아니라 콘크리트를 절단할 장비, 생존자 탐지 센서, 드릴 등 필수 구조 장비도 크게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급히 귀국한 엔지니어 하셀 멘도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구가 없어 구조 시간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며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간을 장비 부족 때문에 허비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망자 계속 증가…실제 피해는 훨씬 클 수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현재까지 최소 2,295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사회는 실제 희생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수만 명 규모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유엔도 대규모 희생에 대비해 시신 수습용 바디백 1만 개를 확보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라과이라 항구에는 임시 영안실이 설치됐으며 항구 곳곳에는 관이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됐다.


골든타임 지났지만 희망은 이어져


지진 발생 후 통상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72시간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지만 구조대는 아직 수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제구조단체(Resource Rescue International)의 잭 소프 대원은 "잔해 속에서 생존자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며 "생존자 구조 가능성이 남아 있는 만큼 끝까지 수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남부사령부도 약 2,000명의 병력이 수색과 구조, 복구 지원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공무원 약탈까지…분노 커지는 국민들


재난 속에서 일부 공무원이 무너진 건물에서 발견된 귀중품을 훔친 사실까지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과학·형사·범죄수사대(CICPC)는 구조 현장에서 귀중품을 횡령한 혐의로 공무원 4명을 체포하고 직무를 박탈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부패 행위와 비윤리적 행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야권은 정부의 구조 대응 실패와 국가 시스템 붕괴가 이번 참사를 더욱 키웠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해외 망명 중 귀국 의사를 밝히며 "지금은 국민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울 시간도 없다"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여전히 잔해 속 가족을 찾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항구에서 근무하던 데이비스 라모스는 지진으로 두 딸과 장인·장모를 잃었다. 그는 지진 직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며칠째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다.


"울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눈물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강인한 의지뿐입니다."


그는 지금도 어린 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무너진 아파트 잔해를 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베네수엘라 대지진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국가 기능 마비와 경제 붕괴, 연료난, 행정 부실이 복합적으로 만든 비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구조 지원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장기적인 국가 재건과 사회 인프라 복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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