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지 5년이 지났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대규모 전쟁의 종식이라는 변화와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위기에 직면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원조가 줄어드는 가운데 여성과 소녀들의 교육·취업·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와 빈곤, 강제이주와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유엔과 국제 구호단체들은 특히 여성과 소녀들이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여성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의 교육과 고용, 공공생활 참여,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누적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 상황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학교에서 사라진 240만 명의 소녀들
가장 상징적인 문제는 교육권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학생의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다. 유네스코는 2026년 8월 기준 약 24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여학생이 중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2022년 여학생의 중등학교 교육을 중단시킨 데 이어 여성의 대학 교육도 금지했으며, 이 조치는 당초 일시적인 조치로 설명됐지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교육 기회의 상실이 한 세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네스코와 유니세프는 여성 교사의 부족과 학습 환경 악화가 아프가니스탄 전체의 교육 수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초등교육을 마칠 무렵인 어린이 가운데 93%가 기본적인 읽기 능력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을 받지 못한 소녀들이 성인이 된 뒤 노동시장과 사회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여학생 교육 제한은 개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넘어 빈곤의 대물림과 국가의 인적자본 약화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워진 여성들
교육 금지는 여성 인권 제한의 일부에 불과하다.
탈레반 통치 아래 여성들은 대부분의 직업에서 배제됐으며, 공공장소와 이동에 대한 제한도 받고 있다. 유엔여성기구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5,000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절반가량은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만 집 밖으로 나간다고 답했다.
여성의 사회적 고립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사 대상 여성의 약 70%가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나쁨' 또는 '매우 나쁨'이라고 평가했으며,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하는 것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여성도 상당수에 달했다.
유엔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사회적 보수화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자율성을 체계적으로 제한하는 구조적 인권 문제로 보고 있다. 유엔여성기구는 탈레반의 여러 법령과 정책이 여성의 권리와 가시성, 의사결정 참여를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의 사회적 배제가 심화되면서 인도적 지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여성 직원의 활동이 제한되면 여성과 아동에게 필요한 의료·보호·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유엔은 여성의 권리 제한이 단지 인권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도주의적 대응 자체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조 감소가 겹친 인도주의 위기
인권 위기는 경제·식량 위기와 맞물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2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약 2,19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우며, 이 가운데 어린이가 1,160만 명에 이른다. 자연재해와 기후 충격, 취약한 경제, 기본 서비스 부족, 대규모 귀환과 재정 부족이 서로 겹치면서 위기를 키우고 있다.
식량 사정도 심각하다. 유니세프는 2026년 약 370만 명의 5세 미만 아동이 영양실조 위험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국제식량안보 단계분류(IPC) 전망에 따르면 2026년 한 해 동안 약 1,740만 명이 위기 단계 이상의 급성 식량불안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가운데 약 470만 명은 비상 단계에 해당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2025년 말 보고서에서 2026년 3월까지 900만 명이 넘는 아동이 위기 또는 비상 수준의 식량불안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5세 미만 아동 가운데 급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어린이도 약 3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체계도 압박받고 있다. 유니세프는 2025년 한 해 동안 급성 영양실조에 대한 치료를 받은 어린이가 61만 명 이상이었다고 집계했지만, 동시에 자금 부족으로 영양·식수·위생 분야의 서비스가 중단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줄어드는 원조, 커지는 공백
아프가니스탄의 위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국제사회의 지원 감소다.
2021년 이전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지출 상당 부분은 해외 원조에 의존했다. 그러나 탈레반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는 정권의 인권 정책과 여성 차별을 이유로 경제적·외교적 압박을 강화했고, 인도적 지원 역시 재정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은 최근 여성 관련 지원 프로그램의 축소가 특히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조사 대상 여성 주도 단체의 절반 이상이 자금 부족 때문에 향후 1년 안에 문을 닫거나 활동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2026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유엔의 인도주의 지원 호소 역시 필요한 자금에 비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공여국의 해외원조 정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원조국 가운데 하나였던 미국의 지원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국제기구와 현지 구호단체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원조 감소의 원인을 특정 국가의 정책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제사회 전반의 인도적 지원 재정 부족과 다른 분쟁지역으로의 자원 분산,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접근 제한 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편 재배는 급감했지만 농촌의 생계는 흔들려
탈레반 통치 이후 상대적으로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 분야도 있다. 바로 아편 생산이다.
탈레반은 2022년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재배 면적은 급격히 감소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2년 약 23만3,000㏊에 달했던 양귀비 재배 면적은 2023년 약 1만800㏊로 95% 감소했다. 2024년에는 약 1만2,800㏊로 소폭 증가했지만 금지 이전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크게 낮았다.
이는 불법 아편 시장을 축소했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에게 양귀비는 단순한 마약 작물이 아니라 주요 현금 수입원이었다. UNODC는 2023년 양귀비 재배 농가의 수입이 전년보다 92%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대체 작물과 안정적인 소득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지 정책은 농촌 빈곤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편 시장이 위축되면서 새로운 불법 마약 시장이 등장할 가능성도 국제사회의 관심사다. UNODC는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서남아시아에서 메스암페타민 등 합성 마약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탈레반의 외교적 고립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탈레반의 지위 역시 변화하고 있다.
2025년 7월 러시아가 탈레반 정부를 공식 인정하면서 국제사회의 첫 공식 승인국이 됐다. 중국과 일부 주변국들은 카불에 외교 대표를 두고 경제·안보 관계를 확대해 왔지만, 서방 국가들은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정책을 비롯한 인권 문제를 이유로 공식적인 정권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 변화는 아프가니스탄이 완전히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태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권 문제와 외교적 현실 사이에서 국제사회가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탈레반은 치안이 개선됐고 국가가 안정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슬람국가(ISIS-K) 등 무장단체의 활동과 지역적 불안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무장세력과의 충돌, 국경 지역의 긴장, 대규모 귀환민 문제 등이 이어지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2021년 탈레반의 재집권 당시 국제사회가 우려했던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었다. 여성과 소녀들이 다시 교육과 사회생활에서 배제되고, 인권 보호 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이었다.
5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우려는 현실의 문제가 됐다.
여학생 수백만 명이 중등교육의 문턱에서 멈춰 있고, 여성들은 노동시장과 공공생활에서 밀려났다. 동시에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노출되고 있으며, 기후재난과 경제난, 귀환민 증가가 취약한 사회서비스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도주의 위기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의 교육과 취업이 제한되면 가계의 소득과 회복력이 떨어지고, 여성 의료인과 구호활동가의 활동이 제한되면 여성과 어린이에게 필요한 의료·영양·보호 서비스의 접근성도 함께 악화된다.
유엔은 이러한 상황을 '겹쳐지는 위기'로 표현한다. 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장기화된 빈곤과 권리 제한, 기후 충격이 새로운 형태의 취약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5년은 결국 한 국가의 정치적 변화가 국민의 기본권과 일상에 어떤 장기적 결과를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에게 교육받을 권리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일하고 사회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안정만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원조 규모를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과 소녀들의 교육·노동·의료 접근권을 포함한 기본적 인권을 중심에 두고 인도적 지원이 실제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국제적 대응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위기는 끝난 전쟁의 뒷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그리고 국제사회가 그 권리를 위해 얼마나 오래 책임을 다할 것인지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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