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거대한 사막으로 알려진 리비아 남서부의 사하라 한가운데에는 기린과 소, 코끼리, 악어 등 지금의 풍경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동물들이 새겨진 선사시대 암각화가 남아 있다.
고고학·예술 콘텐츠를 소개하는 X 계정 ‘Archaeology & Art’는 19일 리비아 와디 마텐두스(Wadi Mathendous)의 암각화 사진을 게시하며 “기린과 소의 암각화, 신석기 시대, 약 8000년 전”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에는 길게 뻗은 목과 다리를 가진 기린 두 마리와 주변의 다른 동물 형상이 바위 표면에 깊게 새겨져 있다. 이곳은 리비아 남서부 페잔(Fezzan) 지역 메사크 고원(Messak Plateau)의 주요 와디, 즉 건조한 계곡 지대 가운데 하나로, 중앙 사하라를 대표하는 암각화 유적지로 꼽힌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이 소장한 와디 마텐두스 암각화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과 주변 계곡에는 수만 점에 이르는 암각화가 분포한다. 기린뿐 아니라 코끼리, 악어, 버펄로, 소, 타조, 고양잇과 동물, 인간과 동물이 결합된 형상 등이 함께 나타난다. 영국박물관은 이 일대를 메사크 암각화의 핵심 지역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기린은 와디 마텐두스 암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영국박물관의 기록에는 기린 무리가 함께 새겨진 장면뿐 아니라 코끼리와 기린이 같은 암면에 겹쳐 표현된 사례도 남아 있다. 일부 암각화는 이른바 ‘부발루스(Bubalus) 양식’으로 분류되며, 이후 목축 문화와 관련된 소의 표현도 확인된다.
이러한 동물들은 단순한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선사시대 사하라의 환경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여겨진다.
지질·고환경 연구에 따르면 메사크 고원은 홀로세 초기와 중기에 현재보다 훨씬 습윤한 환경을 경험했다. 암석 표면의 풍화층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약 9200년 전부터 5500년 전까지 습윤한 환경이 존재했고, 이후 점차 건조화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중앙 사하라에는 오늘날보다 풍부한 식생과 물이 존재했고, 대형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와디 마텐두스의 기린과 코끼리, 악어 같은 동물 암각화는 흔히 ‘푸른 사하라(Green Sahara)’ 또는 ‘습윤한 홀로세 사하라’의 기억을 돌 위에 남긴 기록으로 해석된다.
다만 X 게시물에 제시된 ‘약 8000년 전’이라는 연대를 특정 암각화 전체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와디 마텐두스와 메사크 지역의 암각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양식에 걸쳐 제작됐으며, 일부는 약 1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목축 문화와 관련된 암각화는 그보다 뒤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화의 정확한 제작 연대를 특정하는 일 자체도 쉽지 않다. 리비아 사막 지역의 암각화는 직접적인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이 가능한 유기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암석의 풍화층, 그림과 조각의 양식, 주변 유적과의 관계 등을 종합해 연대를 추정한다. 연구자들은 따라서 개별 암각화에 하나의 정확한 연도를 부여하기보다는 일정한 시대 범위로 접근하고 있다.
와디 마텐두스 암각화는 자연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변화도 함께 보여준다. 초기에는 기린과 코끼리, 버펄로 등 야생동물이 중심을 이루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와 목축 생활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메사크 고원에서는 기원전 약 5200~3800년 사이로 추정되는 목축 사회의 의례와 소 관련 유적도 확인돼, 암각화가 당시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상징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늘날 와디 마텐두스는 극도로 건조한 사하라의 일부다. 그러나 바위 위에 새겨진 긴 목의 기린과 거대한 야생동물들은 이곳이 과거에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음을 말해준다.
8천 년이라는 시간은 하나의 정확한 제작 연대라기보다 이 암각화들이 만들어진 홀로세 시대의 긴 시간을 상징하는 표현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메마른 사막 풍경 속에 남아 있는 이 조각들이, 한때 사바나와 물, 그리고 다양한 야생동물이 존재했던 ‘또 다른 사하라’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EST 뉴스
-
자연과 전통을 아이들의 시선으로…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사진=셀리맘아트] 인공지능이 이미지와 예술작품까지 만들어내는 시대, 아이들은 미래에 무엇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어 할까. 자연과 생명,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가 서... -
[현장]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청소년들이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1층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ESG코리아뉴스] 사라져가는 자연과 생명, 잊혀가는 전통과 문화를 예술로 기억하고 미래로 이어가려는 청소년들의 시선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6 제4회 청소년환경예술전 《Memory for Tomorrow》’ 개막식... -
[문화의 현장] 이경미 박사가 기획한 ‘도시시작’…평창동의 길, 몸으로 다시 만나다
▲ 이경미 박사가 기획한 ‘도시시작’ 평창동의 길, 몸으로 다시 만나다중 가나아트센터 계단에서의 머포먼스 모습. [사진=이경미 박사 제공] 늘 걷던 길도 걷는 방식을 바꾸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계단에서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고, 손끝으로 산등성이의 선을 따라가며, 오... -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 ①] 초콜릿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마야 신화 속 카카오
[편집자주]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는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와 소장 자료를 따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초콜릿의 뿌리를 찾아가는 ESG코리아뉴스의 기획연재이다. 카카오의 기원에서 출발해 마야의 신화와 문화, 아즈텍 사회의 카카오, 유럽으로 건너간 뒤 달라진 초콜릿, 오늘날 한 조각의 초콜릿... -
[갤러리] 청년 환경예술가 오유나의 'Fragments of Self'
▲오유나 作, Fragments of Self [사진=오유나] 〈Fragments of Self〉를 처음 구상했을 때 저는 무의식과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모습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경험과 기억,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저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 -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 ②] 카카오는 왜 ‘신의 선물’이 됐을까…아즈텍 신화(Aztec Mythology)와 케찰코아틀(Quetzalcoatl)
[편집자주] 〈초콜릿, 문명을 만나다〉는 '한국초콜릿연구소뮤지엄'의 전시와 소장 자료를 따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초콜릿의 뿌리를 찾아가는 ESG코리아뉴스의 기획연재이다. 1편에서는 약 5,300년 전 남미 상부 아마존에서 확인된 카카오 이용의 흔적과 마야 문명에서 카카오가 음식과 의례, 신화적 세계관 속에...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