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아우르는 ‘TV 속 어머니’로 사랑받았던 배우 준 록하트(June Lockhart)가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1925년 6월 25일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자택에서 가족 곁에서 자연사했다. 40년 지기이자 가족 대변인인 라일 그레고리는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매일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를 읽으며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준 록하트는 미국 텔레비전 역사에서 가장 따뜻한 어머니상으로 기억된다. 1958년부터 1964년까지 CBS 시리즈 래시(Lassie) 에서 고아 소년 티미와 충직한 콜리견 ‘래시’를 돌보는 루스 마틴 역으로 출연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농촌 배경의 따뜻한 가족극 속에서 록하트가 보여준 자상한 미소와 안정감은 당시 미국 가정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대표했다. 이어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방영된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 에서는 우주선 주피터 2호를 타고 먼 행성으로 떠나는 가족의 어머니, 모린 로빈슨 박사로 분해 완전히 다른 시대의 ‘모성’을 그려냈다.
지구에서 가정의 중심이던 인물이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 가족의 생존과 안정을 책임지는 모습은 당시 미국 사회의 과학 낙관주의와 여성상 변화를 동시에 상징했다.
화면 속 그녀는 늘 차분하고 다정한 어머니였지만, 실제의 록하트는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1994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미지는 통제할 수 없어요. 하지만 평판은 통제할 수 있죠. 제 이미지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줄 뿐이에요”라며 웃었다. 록앤롤 콘서트를 즐기고, 탱크를 몰고, 열기구와 글라이더를 타며 모험을 즐겼던 그녀는 ‘완벽한 어머니상’이라는 고정된 틀을 스스로 벗어나려 했다.
록하트는 배우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 진 록하트는 헐리우드 황금기 시절 성격파 배우로 활약했고, 어머니 캐슬린 역시 무대에서 함께 연기했다. 어린 준은 여덟 살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서며 예술가의 길을 일찍이 걷기 시작했고 1938년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부모와 함께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녀의 삶은 텔레비전의 역사와 함께했다. 영화계의 변화로 활동이 주춤하자 록하트는 일찌감치 TV로 무대를 옮겼고, 생방송 드라마, 토크쇼, 게임쇼 등에서 활약했다. 래시와 로스트 인 스페이스 이후에도 페티코트 정션(Petticoat Junction), 제너럴 호스피털(General Hospital), 노츠 랜딩(Knots Landing), 콜비즈(The Colbys) 등 다양한 시리즈에 출연하며 긴 세월 동안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갔다.
화면 밖에서 록하트는 사회적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백악관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는 미디어 패스를 활용해 직접 취재를 다녔고,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각종 퍼레이드의 내레이션도 맡았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그레고리는 “그녀의 진정한 열정은 연기보다 저널리즘이었다”고 회상했다.
준 록하트는 두 번 결혼했으며 두 딸 앤 캐슬린과 준 엘리자베스를 두었다. 그녀의 딸들도 방송계와 예술계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오늘날까지 래시와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미국 텔레비전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을 감싸 안는 따뜻한 눈빛의 준 록하트가 있다. 그녀는 생전에 “배우 인생에서 자신에게 맞는 역할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많은 배우들은 평생을 바쳐도 그걸 만나지 못하죠”라고 말한 바 있다.
지상에서든, 우주 한가운데서든 늘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배우 준 록하트. 그녀는 이제 영원한 안식 속으로 들어갔지만 세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우리의 어머니’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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