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항공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고 증가하면서 항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철도나 도로, 해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해법으로 지속가능항공연료(SAF)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2024년 기준 SAF는 전 세계 제트 연료 사용의 약 0.3% 수준에 불과하며 연간 생산량은 약 100만 톤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기간 내 항공 부문의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업계는 단순히 연료를 대체하는 접근을 넘어 항공기 설계 자체의 혁신을 통한 효율 향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블렌디드 윙 바디(Blended Wing Body, BWB)라는 새로운 항공기 설계가 있다. ‘혼합익’으로도 불리는 BWB는 동체와 날개의 경계를 흐리게 해 기체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익형으로 만드는 구조다. 이 설계는 양력과 저항, 내부 용적을 동시에 최적화할 수 있어 연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소형 시제기와 개념모델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기존의 관형 동체(Tube-and-Wing) 설계보다 연료 소모를 20~30% 이상 줄일 수 있으며 승객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에어버스(Airbus)의 MAVERIC 축소 실험기는 최대 20%의 연료 절감 가능성을 보여주며 여러 연구와 시제기 프로젝트가 BWB의 공력적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한 스타트업들도 상용화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Natilus는 200석 규모의 BWB 여객기 ‘Horizon’을 공개하며 기존 단일통로 항공기에 비해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연료 소모를 약 30%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허리존(Horizon)은 기존 공항 인프라와 호환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2030년대 초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인 제트제로(JetZero)는 ‘Z4’ 등 BWB 기반 설계를 통해 50%의 연료 효율 개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미 국방부와의 계약 및 유나이티드항공 등 주요 항공사와의 협력으로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 잠재력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현실적 과제도 많다. BWB는 기존 항공기와 달리 안정성과 제어 특성이 달라 고도화된 비행제어 시스템과 정밀한 공력 설계가 필수적이다. 대형 기체로 확장될 경우 구조적 강도, 피로, 소음, 승객 안전성 검증이 모두 새롭게 요구된다. 과거 X-48 등 실험기들이 중요한 기술적 통찰을 제공했지만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개발비와 인증비가 막대하고, 각국 항공당국의 규제 절차가 길어질 가능성도 크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정비·운항 체계와 훈련 시스템의 전환 비용이 만만치 않아 신기종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SAF와 BWB가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BWB가 비행 효율을 크게 개선하더라도 연료 자체의 탄소집약도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SAF의 확대는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SAF 생산시설 투자가 늘고 있으며 유럽 등에서는 SAF 혼합비율 의무화 정책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생산량과 공급 속도, 높은 단가 등은 여전히 산업 전반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는 SAF 확대와 고효율 항공기 개발을 병행하는 복합 감축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BWB 상용화의 실제 기회는 향후 몇 년간 항공기 제조사의 생산 지연과 항공사들의 노후 기단 교체 수요가 맞물릴 때 열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기회의 창’은 길지 않으며, 항공사들은 운항 안정성, 인프라 호환성, 승무원 훈련 등의 이유로 신기술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BWB 개발 기업들은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하고, 인증과 실증 단계를 통해 항공사에 운영 리스크가 낮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이는 보잉과 에어버스 중심의 시장 구도에 새로운 경쟁 축을 형성할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SAF 생산 확대와 정책적 수요 창출이 핵심이다. 2025년 전후로는 정부 지원과 의무 할당이 SAF 시장의 성장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2030년대 초에는 SAF 비율 확대와 더불어 BWB와 같은 신형 고효율 기체의 점진적 도입이 현실적인 하이브리드 감축 전략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2050년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항공기 설계, 연료, 운항, 공항 인프라 전반의 구조적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블렌디드 윙 바디는 항공 기술 혁신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지만, 그것이 즉시 탄소중립의 해답은 아니다. SAF 확대, 규제 정비, 인증 및 운영 리스크 완화, 제조·공급망 구축 등 다층적 과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만 한다. 항공 산업의 탄소 감축은 연료·기체·운영의 삼박자 혁신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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