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서부 항구 도시 프리맨틀(Fremantle)이 오래 방치된 역사적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1870년대에 지어진 P&O 호텔이 프리맨틀 비엔날레 2025를 통해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이 호텔은 이번 비엔날레를 계기로 40명 이상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몰입형 예술 전시와 룸서비스의 무대로 변신했다.
P&O 호텔은 한때 골드러시 시기와 항구의 전성기를 거치며 선원과 노동자들의 숙소로 활약했으나, 오랜 세월 방치되며 건물 외부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호텔의 31개 객실과 욕실, 복도, 발코니, 계단실까지 모든 공간이 예술적 실험의 장이 되었다. 조각,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매체가 건물 내부를 채우며, ‘잊힌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복원이나 향수가 아니다. 과거 이 호텔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 도시의 항구 역사, 지역의 식민지 유산, 그리고 기후변화까지 복합적 주제를 담는다. 예를 들어, 작곡가 이안 그랜디지(Iain Grandage)와 첼리스트 멜 로빈슨(Mel Robinson)은 호텔 욕실에서 19세기 선원들의 노래를 현대적 음악으로 재해석하며 바다의 소리와 공간이 어우러진 몰입형 체험을 선보인다.
토착 예술가 잘리 모건(Zali Morgan)은 지역의 식민지 역사를 주제로 객실을 수채화와 재활용 종이로 가득 채워, 공간 자체가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되도록 했다. 영상 작가 엘렌 브로드허스트(Ellen Broadhurst)는 과거 호텔을 거쳐 간 사람들의 얼굴을 종이 조형물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표현하며, ‘공간 속 유령의 합창’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도시 재생과 기억의 재배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방치된 역사적 건축물이 예술가들의 실험실로 변하면서,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건물과 도시가 지닌 다층적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 성찰의 도구로 기능함을 입증한다.
룸서비스(Room Service) 전시는 2025년 11월 29~30일 양일간 진행되며 객실 단위로 제한된 입장 시간을 배정해 방문객이 각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이야기를 감각을 통해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관객들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걷고, 듣고, 느끼고, 머무르면서 공간 속 이야기에 참여하게 된다.
이번 비엔날레와 P&O 호텔 프로젝트는 찬사뿐 아니라 질문도 남긴다.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예술적 재생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 것인가, 도시와 공동체, 개발과 보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이런 고민은 단순한 비판이 아닌, 도시와 기억, 예술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프리맨틀 비엔날레 2025(Fremantle Biennale 2025)를 통해, P&O 호텔은 단순한 역사적 건물이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폐허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이 도시와 기억 속에서 가지는 힘을 보여주는 산 증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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