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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가…쿠팡 사건이 던지는 사법 거버넌스의 경고

  • 하윤아 기자
  • 입력 2026.01.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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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 사건이 던지는 사법 거버넌스의 경고 [그래픽=ESG코리아뉴스]

 

쿠팡이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판매촉진비와 장려금이 적법한지 여부를 두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임박한 가운데, 이 사건은 단순한 유통업계 분쟁을 넘어 한국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과 국가 거버넌스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을 이유로 약 3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쿠팡은 즉각 행정소송에 나섰고 서울고등법원은 2024년 2월 공정위 패소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이 판결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2년 가까이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며, 사회적 검증과 비판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왔다는 점이다.


입증 책임은 국가에…힘의 불균형이 만든 판결 구조


서울고법은 “판매장려금이 합리적 범위를 넘었는지는 공정위가 증명해야 한다”며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모두 취소했다. 이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문제는 누가 그 ‘입증’을 수행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갖고 있느냐다.


쿠팡은 전직 대법관 2명과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다수를 포함한 초대형 법률대리인단을 구성했다. 반면 공정위는 예산과 인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소형 로펌과 내부 인력에 의존해 대응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법정에서의 무기 평등(equality of arms)’이 무너진 상태라는 지적을 낳는다.


해외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는 반복돼 왔다.


미국에서는 아마존, 구글, 메타 등이 반독점 소송에서 초대형 로펌과 전직 고위 관료 출신 변호사를 대거 기용하며 규제 당국을 압박해 왔고, 유럽연합(EU) 역시 “빅테크의 법률 자본이 민주적 규제를 잠식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식 보고서로 제기한 바 있다.


승소 이후 더 걷었다…‘합법’이 된 부담 전가


더 심각한 문제는 판결 이후의 현실이다. 국회 청문회와 공정위 신고 자료를 종합하면, 쿠팡은 2024년 한 해 동안 광고·홍보비·할인쿠폰 등 판매촉진비로 약 1조4천억 원, 판매장려금으로 약 9천억 원을 받아 총 2조3천억 원 이상을 입점·납품업체로부터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직매입 거래액의 약 9.5%에 해당하는 규모다. 법원의 판단이 사실상 “증명되지 않으면 위법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시장에 던지면서, 대형 플랫폼이 비용 전가를 더욱 구조화·정교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셈이다.


EU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사후 입증’이 아닌 ‘사전 규제’ 대상으로 전환했다. 일본 역시 대형 플랫폼의 판촉비 전가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조사·공개하고 있다.


전관·대형 로펌 의존, 사법 신뢰를 흔들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지점은 전직 대법관과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참여한 방어 전략이다.

알고리즘 조작 과징금 사건에서도, 쿠팡 승소 판결을 내린 판사가 퇴직 후 김앤장에 합류한 사실은 “사법부의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물론 전관 출신 변호사의 선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며, ‘누가 어떤 변호사를 썼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사법 신뢰는 무너진다.


미국 연방대법원과 EU 사법재판소는 최근 판결문 공개 확대와 이해충돌 규정 강화를 통해 이런 의혹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법부 역시 판결문 비공개, 전관 영향력 논란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 판단,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의미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 파장은 쿠팡 한 기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플랫폼 자본과 국가 규제, 사법부의 역할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기준점이 된다.


만약 ‘입증 책임’이라는 형식 논리에만 머문다면, 규제 당국은 점점 위축되고 대형 플랫폼은 더욱 공고한 지위를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시장 지배력과 구조적 우월성을 실질적으로 고려한 판단이 내려진다면, 이는 한국 사법부가 공정 경쟁과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것이다.


법은 강자의 방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최소한의 안전망이어야 한다. 힘 있는 변호사와 자본을 앞세워 법의 취지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시장과 소비자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로 돌아온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단순한 과징금 사건이 아니라,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국가적 답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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