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정말 듣고 있는 걸까
코칭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실습을 하던 날이었다. 고객은 말을 꺼내자마자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쏟아냈다. 스스로도 정리하지 못했던 기억들, 무의식 깊숙이 새겨진 상처는 힘든 날이면 우울감과 무력감으로 되살아나 그의 숨을 조용히 짓눌렀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고객의 소리를 듣는 서비스업에 몸담아 왔다. 사람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에 익숙하다고 믿으며 코치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새겨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말보다 깊은 일이기도 했다. 그 마음이 전해진 걸까. 고객은 안도한 듯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경청으로 함께한 대화 속에서 과거에 묶여 있던 시선이 조금씩 지금의 자신을 향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스로 꿈꾸는 미래를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날의 코칭 대화를 계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들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코치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말 한마디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이 흐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를 보며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은 해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마음으로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과연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적게 듣는다. 문자 하나, 댓글 한 줄로 마음이 전해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대화는 어딘가에서 자꾸 엇갈린다. 말은 전해졌지만 마음은 닿지 못한 채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간관계를 맺으며 알게 된 이야기들이 다른 자리에서 가벼운 소재가 되는 순간, 마음을 안전하게 나눌 곳은 점점 줄어든다. 그렇게 우리는 듣지 못한 말들 위에 오해를 쌓아 간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경청을 방해하는 것은 악의만이 아니다. 오히려 선의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봤거나 먼저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듣기를 멈춘 것이다. 상대가 원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끝까지 들어주는 누군가였을지 모른다.
경청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 조용히 시작되는 연습이다. 제대로 연습해 보지도 않은 채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하며 마음의 문을 닫는 순간, 소통의 부재는 계속 쌓여 간다. 시간이 흐른 뒤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경청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업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코칭이 가르쳐 준 진짜 듣기
코칭을 배우며 수십 번의 대화를 반복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게 되었다. 코칭을 배우던 그 시간은 내가 말을 줄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깨달았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태도라는 것을... 상대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일이며, 잠시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이다.
경청에도 방법이 있다. 진짜 듣기는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눈을 바라보고 표정을 읽고, 말보다 먼저 흐르는 감정을 느끼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말의 온도를 느끼는 그 과정이 온전한 경청을 만든다. 온라인 문자만으로는 온전한 경청이 어려운 이유다.
코칭을 처음 시작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 "고객님과 나눈 모든 대화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철저히 비밀이 유지됩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되겠습니다." 비밀이 보장되는 대화. 이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문을 여는 큰 용기가 되기도 한다.
한자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들을 청(聽) 자를 풀어보면, 그 가장 아래에 '마음 심(心)'이 자리하고 있다. 경청은 단순한 듣기가 아니다. 상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온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들어주고,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것. 무엇보다 먼저 듣는 것이다. 사람은 해답 때문에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꺼내 보인다.
마음 꽃을 피우는 봄의 연습
경험으로 겪고 보니 경청은 상대를 위해 내 말보따리를 잠시 내려놓는 용기였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듣는 이가 자신의 자리를 잠시 내어주는 일이다.
침묵이어도 좋고, 짧은 맞장구도 좋다. 오로지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일 때, 상대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내가 아는 답, 내가 겪은 경험, 내가 건네고 싶은 조언을 잠시 내려놓을 때, 상대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꺼냈다는 안도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진다. 경청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 준다.
이제 봄이다. 만물이 저마다의 때를 기다리며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 꽃이 온전히 피어나도록, 더 많이, 더 진심으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경청은 사람의 마음 꽃을 피우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덧붙이는 글 ㅣ강윤영 (Kang Yoon Young)
'꿈글'로 활동하며 사람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설계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4년간 글쓰기와 북마케팅 활동을 이어오며 정신건강문화사, DID드림코칭센터 등 브랜드 및 프로젝트의 콘텐츠 기획과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출판 브랜드 ‘달별담’을 통해 글과 코칭을 기반으로 출판 프로젝트와 글쓰기 커뮤니티, 북살롱을 운영하며 개인의 서사가 삶과 브랜드로 확장되는 과정을 돕고 있다.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철학 아래 사람의 이야기가 존중받는 콘텐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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