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의 외딴 바다를 오가는 일각고래(narwhal)가 과학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그린란드 동부 피오르의 해양 환경을 조사하는 ‘이동식 관측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따뜻한 대서양 해수가 그린란드 깊숙한 빙하 전면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미국 과학저널 Science Magazine은 29일 X를 통해 최근 발표된 연구를 소개하며, 센서를 부착한 6마리의 일각고래가 3년 동안 동그린란드의 외딴 해역을 이동하면서 수온과 염분 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전했다. 이 자료는 따뜻한 대서양 해수가 동그린란드의 깊은 피오르까지 들어가 빙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관측 자료가 됐다. 해당 연구는 8월 26일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그린란드 동부의 스코어스비 사운드(Scoresby Sound) 지역에 서식하는 일각고래 6마리에 수온·염분·수심을 측정할 수 있는 CTD 센서를 부착했다. 센서는 고래가 자연스럽게 바닷속을 이동하고 잠수하는 과정에서 해양 데이터를 기록했다.
일각고래가 수집한 자료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2,060개의 해양 관측 프로파일에 달했다. 일부 일각고래는 수심 1,500m가 넘는 곳까지 잠수했으며, 센서는 개체에 따라 85~332일 동안 작동했다. 연구진은 이 자료를 세계해양데이터베이스(World Ocean Database)에 축적된 2,200개 이상의 과거 해양 관측자료와 결합해 동그린란드 해역의 장기적인 수온과 해수 특성 변화를 분석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선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직접 얻은 자료라는 데 있다. 스코어스비 사운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피오르 시스템 가운데 하나로, 바다와 연결된 깊은 수로가 빙하 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하지만 해빙과 험난한 기상 조건 때문에 연구선이 계절에 관계없이 충분한 관측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반면 일각고래는 이러한 환경을 생활공간으로 삼는다. 연구진은 고래의 이동과 잠수를 이용해 사람이 선박을 보내기 어려운 해역의 수온과 염분을 측정할 수 있었다. 미국지구물리학회(AGU)의 과학 전문 매체 Eos도 이번 연구를 소개하면서 일각고래가 겨울철에도 얼음으로 덮인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에 기존 선박 관측으로 확보하기 어려웠던 자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서양화(Atlantification)’ 현상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염분이 높은 대서양 기원의 해수가 북극해로 더 깊고 넓게 유입되면서 기존의 차갑고 염분이 낮은 극지방 해수의 영역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동그린란드 해역에서는 대서양 기원의 중층수(Atlantic Intermediate Water)가 점차 두꺼워지는 반면, 상층부의 차가운 극지방 해수층은 얇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특히 블로세빌 분지에서는 수심 약 250m 아래에서 대서양 기원의 물이 우세하게 나타났으며, 1960년부터 2021년 사이 수심 500m 이내의 해수 온도는 연평균 약 0.047℃씩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따뜻한 해수가 해안 가까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대서양 기원의 따뜻한 중층수가 피오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해안에서 최대 약 300㎞ 떨어진 빙하 전면의 깊은 분지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스코어스비 사운드와 캉게를루수악(Kangerlussuaq) 지역의 빙하는 상대적으로 얕은 해역에 위치한 빙하보다 더 따뜻하고 염분이 높은 해수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 현상은 그린란드 빙하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빙하가 녹는 과정은 단순히 따뜻한 공기가 빙하 표면을 녹이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해양빙하의 경우 상대적으로 따뜻한 해수가 빙하 아래쪽과 전면에 도달하면 해저 또는 수중에서 빙하를 녹이는 ‘잠수함 융해(submarine melt)’가 증가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관측을 통해 따뜻한 대서양 중층수가 빙하 전면까지 열을 전달하고 있으며, 이것이 빙하의 얼음 손실을 가속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서는 따뜻하고 염분이 높은 물이 존재하는 깊은 피오르의 빙하에서 빙산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도 관찰됐다.
다만 이번 연구가 모든 빙하의 후퇴가 대서양 해수 때문이라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 역시 빙하의 얼음 손실에는 대기 온도, 표면 융해, 강수, 빙하 자체의 역학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빙하 전면에서 직접 확보된 일각고래 관측자료는 2017~2020년에 집중돼 있어 특정 빙하에 따뜻한 물이 정확히 언제부터 도달했는지까지 장기간에 걸쳐 확정하기에는 관측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최근 해외 과학 매체들도 이러한 자료의 한계를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북극의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린란드 빙하와 빙상에서 녹아내린 담수는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해양의 염분과 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대규모 해양순환과 기후 시스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이번 자료가 향후 빙하 융해량을 보다 정확하게 추정하고 기후모델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기후변화를 관측하는 방식 자체다. 연구자들은 얼음으로 막힌 북극의 바다에 거대한 연구선을 투입하는 대신, 그곳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일각고래의 움직임을 활용했다. 일각고래가 깊은 바다로 잠수할 때마다 수온과 염분, 수심에 대한 자료가 축적됐고, 이 데이터가 기존의 선박 관측자료와 결합되면서 그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동그린란드 피오르의 해양 환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이번 연구는 일각고래가 기후변화의 피해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 변화를 측정하는 과학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구의 주인공인 일각고래 역시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북극 생물이다. 해수 온도 상승과 해빙 감소가 계속되면 일각고래가 의존하는 차가운 해양환경 역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고래가 과학자를 도왔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넘어선다. 북극의 따뜻해진 바닷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멀리 들어가고 있으며, 그 열이 그린란드 빙하의 가장자리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 인간의 관측 장비가 닿지 못했던 곳에서 일각고래가 보내온 데이터가 이러한 변화를 확인하는 새로운 창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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