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0(월)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마을

- 깔리양족 마을에서/윤재훈

20240411_090458.png
▲여러 오지마을 아이들이 식용유 칠한 대나무 위에 돈 100b와 과자를 따는 놀이 [사진=윤재훈]

 

동남아에서는 그나마 가장 잘 사는 나라 타일랜드, 그곳은 참 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오지 민족들의 천국, 정식적으로는 난민들을 받지 않지만, 과거 중국이나 군사국가 미얀마에서 살기 힘든 소수민족들이 수시로 넘어왔다는 나라, 지금도 군사국가 미얀마에서 주로 샨족 자치주에 있는 카렌족들이 수시로 넘어온다는 나라, 그래도 모른 척 눈감아 준다는 나라
 
검문소마다 경비병에게 슬쩍 돈을 꽂아주며 어느 산 어느 모퉁이 적당하게 눈길이 머물며, 그곳에 짐을 풀고 화전을 하여 아시아 쌀 수출국 1위의 기여한다는 소수 민족들맬라, 웅피앙, 누포 난민캠프들, 국경을 따라 수많은 난민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도 명절이면 다시 수백 리 고향길을 온 가족이 보따리를 이고 지고 산길을 넘고 넘어간다. 다시 국경선에서 웃돈을 주고, 수백 리 고향길을 터덜거리는 완행버스나 조그만 짐칸을 개조한 쏭테우에 의지해, 그리운 고향으로 달려간다.
 

일 년에 삼모작이 가능한 따뜻한 나라, 산등선이 몇 개를 단숨에 넘어가는 산벼들, 산바람이 불 때면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산등성이를 넘어오면 풍년가를 부르듯 춤을 추던 그 벼들. 저절로 배가 불러오는 그 산모롱이, 모롱이들.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깨어나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 다시 해맑아지고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마을

 

 - 깔리양족 마을에서/윤재훈 

 

2아이들과 보물찾기놀이.너희들이자주보려하니여기있어,네가건너편집으로가숨길테니.JPG
▲ 너희들은 여기 있어, 내가 건너편 집으로 가서 숨기고 올 테니, 아이들과 보물찾기 놀이. [사진=윤재훈]

 

산길을 따라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그 옛날 메뚜기나 보리를 논에서 끄슬러 입 주위가 새까매지던 한국의 아이들처럼, 땅을 깊이 파고 귀뚜라미를 잡아 풀잎 끝에 꿰어 움막집으로 달려간다.

 

카렌(깔리양), 몽족, 라후족, 아카족, 리수족, 야오족 등 그 이름도 낯설은 사람들이, 그 땅의 주인인 타이족과 뒤엉켜 사는 나라. 3개월이면 깔람 삐(양배추) 수확이 가능하여 오후가 되면 작은 쏭테우에 늘어지도록 싣고, 밤새 산 구비구비를 돌아 치앙마이 새벽 시장에 풀고 돌아오는 사람들, 그 얼굴에 고이던 해맑은 웃음들.

 

조국이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 웃음이 세상 모든 사람 시름을 잊게 하는 산간 마을, 배는 수미산만 한데 목구멍은 바늘 구멍만 하여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묘한 영감을 주는 민족들, 그들의 의상과 전통, 풍습을 힘겹게 지켜 가고 있는 사람들.

 

산등성이 옥수수 밭이
하늘에 닿아있다

가파른 능선 몇 개를
단숨에 넘어간
키 큰 산 벼들이
바람이 불자
다시 산등성이를 넘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밭고랑에서
평생 귀또리처럼 더듬이를 벼르던
이국의 농부들
이제는 고향처럼 익숙해지는데
산 너머 고향 소식 풍문으로라도 들리면
또 다시 안절부절 해진다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때 절인 아이들
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아낙들
오다가 배고프면 땅을 파 귀뚜라미 잡고
산 벼 훑어 주린 배를 채우며
성긴 이빨 사이로 씹던,

평생 이 산길 오르내리며
메뚜기처럼 밭뙈기에 붙어살던 사람들
고향 땅을 지척에 두고
학처럼 날아오른다

 

- ‘오지 산마을에서’, 윤재훈 

 

3미얀마왕국의 침입으로 무너진 사찰들.JPG
▲ 미얀마 왕국의 침입으로 무너진 쑤코타이 왕국 [사진=윤재훈]

 

아이스크림값보다 훨씬 싼 망고와 코끼리 먹이로나 쓰이는 바나나가 지천인 <타이 짜그리 불교왕국>, 역시 불교 왕국이면서 그 이름에 반해 가고 싶었던 <아유타야 왕국>, 그러나 강성했던 미얀마 왕국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불교 유적들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그 옆에 있던 또 하나의 불교 왕국 <쑤코타이 왕국>, 여기도 거대한 불탑과 부처님들의 머리들이 미얀마의 제국의 말발굽 아래 속절없이 떨어져, 손발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어떻게 같은 부처님을 믿는 나라에서 이럴 수가 있을까? 부처님의 정신은 자비인데, 인간이 창조해 놓은 신은 오직 사악한 정신만 깃들어, 지금까지도 인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 피비린내 나는 조선 초기의 왕자의 난처럼 배다른 형제들의 이권 전쟁 아닌가.

 

 

4쏨탐을 담은 아낙.JPG
▲ 쏨땀을 담는 아낙 [사진=윤재훈]

 

세계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 타일랜드의 두 번째 도시. 또 하나의 빛나는 역사를 간직한 <란나 왕국>의 치앙마이, 지금도 그 후예들이 그 땅을 지키며 찬란했던 황금빛 불교 문명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나라.

일 년 내내 뙤약볕 내리쬐는 노점에서 우리의 무채처럼 시원하게 썰어주는 쏨탐(파파야 샐러드)과 손으로 꼭꼭 눌러서 먹은, 우리 찹쌀보다 낱알이 조금 작은 찰밥 카우니아오, 그 허기를 달래주던 묘한 밥맛,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에게는 영양가는 부족할지 몰라도 한 끼가 든든했다. 그래서 동남아 국가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몸의 곡선이 날렵하고, 배가 나온 사내들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도 멍크(스님)들의 권위가 절대적인 나라, 위빠사나 명상의 나라, 모든 남자가 일생에 한 번 이상은 출가를 해야만 사람 대접을 받는 나라, 왕도 멍크 앞에서는 무릎을 끓고 일생에 한 번쯤은 출가하는 나라, 불당 옆에 부처님과 동등하게 왕의 사진이 있는 나라, 쏭크란이라는 세계적인 림프의 축제가 있어 세계인을 들끓게 하는 나라.

 

어디를 가나 마을 한가운데에는 으레 황금빛 째디와 불타가 선명한 사원이 몇 개씩 있었다. 옛부터 마을의 구심점이었다. 학교의 구실을 하였고 마을 사람이 아프면 병원이 되었던 곳. 마을의 경조사를 관장하던 곳.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으레 멍크를 찾아 지혜를 얻는다.

 

마을의 지름길이 되어 돌아가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내 집 마당처럼 지나가는 곳. 밤이 되면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고, 마을 사람들의 근심이 생기면 해우소(解憂所) 역할을 하는 곳. 그러나 그 옆나라 미얀마처럼 아직은 군인들의 나라.

그 옆에 또 하나의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 특별한 볼거리도 없지만 풍경이 너무나 편안하여 세계의 배낭여행자들이 몰리는 곳, 특히나 시니어들이 몰려와 집을 빌려 아예 살고 있는 곳, 야자수 그늘 아래 저렴한 비용으로 종일 노상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나라. 

 

5전국에서 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JPG
▲ 전국에서 절을 찾아 사찰 순행을 하는 국민들 [사진=윤재훈]

 

그 옆에 국경선을 마주하며 더욱 견고한 군인들의 나라, 예부터 타일랜드와 악연이 깊으며, 언제든지 군부가 마음만 먹으며 위정자들을 순식간 갈아치울 수 있는 <미얀마>, 군인들은 마치 그 땅의 미군들처럼 특별한 공간에서 자기들끼리만 살고 그 안에 있는 학교를 다니며, 권위를 주기 위해 특별 대우까지 받는 나라, 그래서 백성들이 더욱 괴리감을 느끼면 숨을 죽이고, 그러나 아직도 천 불 천 탑의 불교 왕국 <바간 왕국>에 가면 저절로 숙연해지는 나라, 어디를 가나 거대한 불타의 정신이 느껴지는 왕국.

위빠사나(vipassana)의 나라, 보통 대중들에게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고엔카와 미얀마을 중심으로 한 마하시 수행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더러는 순룬(Sunlun), 고엔카(Goenka), 마하시(Mahasi), 쉐우민(Shewoomin)의 수행법으로 분류하는 곳.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부처님, 어디를 가나 두 손을 모으고 내세를 기원하는 사람들, 그래서 현실에서도 더욱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옴 마니 밧메 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나마스떼

전체댓글 2

  • 98107
임인출

삼모작이 가능하고 따뜻한 타이 오지의 산간마을 정겹네요.
배고프긴 했지만 저도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군사국가 미얀마도 알게되고… 오늘도 좋은여행 고맙습니다

댓글댓글 (1)
지재

임인출   >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고향이 시골이었죠
어려웠던 시절이였지만, 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올까요
고향, 언제나 꺼내보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댓글댓글 (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자재의 세계오지 도보순례②] 동남아 불교왕국, 타일랜드와 미얀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