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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를 읽다 ⑤] 올림픽 정신과 표현의 자유 사이…아이티 유니폼이 남긴 질문

  • 권민정 기자
  • 입력 2026.02.1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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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계 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텔라 진(좌) 동계올림픽 로고와 아이티 국기(중앙) 아이티 대표팀 유니폼(우) [사진=faces of haiti, 그래픽=ESG코리아뉴스]

 

2026년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아이티 대표팀 유니폼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디자인 수정 사건을 넘어 올림픽 정신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티계 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텔라 진이 디자인한 스키복에는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를 이끈 혁명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의 기마 초상이 담겨 있었다. 해당 이미지는 아이티 출신 작가 에두아르 뒤발-카리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아이티의 독립과 저항 그리고 자긍심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무대에서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 금지 원칙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 혁명 지도자의 이미지는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최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상징과 메시지 표현을 둘러싼 기준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유니폼은 전면 수정됐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기능성 원단 위에 밤새 손으로 다시 그림을 그려 넣었고 최종 승인된 디자인에는 기수가 사라진 말과 푸른 하늘만이 남았다. 인물은 지워졌지만 그 부재는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스텔라 진은 “유니폼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책임의 표현”이라며, 짧은 원단 안에 아이티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회복의 역사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인물 묘사는 사라졌지만 수정된 의상 곳곳에는 여전히 아이티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 서아프리카 전통에서 유래한 여성용 머리쓰개 ‘티뇽’,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소지품에서 영감을 받은 장신구, 시장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주머니 등은 식민의 기억과 회복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선수들 역시 이 옷을 단순한 경기복이 아닌 ‘존재의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스티븐슨 사바트는 세계 무대에서 작은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전했고 알파인 스키 선수 리처드슨 비아노는 이를 “용감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례는 올림픽이 지향하는 ‘정치적 중립’과 개인·국가의 ‘정체성 표현’ 사이의 긴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올림픽은 전 세계가 모여 경쟁을 넘어 우정과 평화를 나누는 장이다. 동시에 선수와 참가국에게는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외신에 따르면 스텔라 진은 IOC의 결정을 비판하기보다 “규칙이 오히려 창의성을 높였다”고 해석했다. 제한이 있었기에 더 깊이 고민했고 더 상징적인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동계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닿는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같은 규칙 아래 경쟁하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존중받는 자리가 중요하다.

 

결국 이번 논란은 표현이 완전히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표현의 방식이 변화한 사례로 남았다. 인물의 초상은 지워졌지만 그 정신은 디자인 곳곳에 스며들어 새로운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동계올림픽 정신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존중과 연대 그리고 다양성의 공존을 의미한다. 아이티 대표팀의 유니폼은 그 가치가 때로는 긴장 속에서 그러나 대화를 통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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