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년을 이어온 우쉬굴리 마을은 \'중세의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조지아의 메스티아(Mestia)에서 열흘 머물고 있다. 슴슴한 마을에 오래 있으면 심심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런 몸의 반응이 느껴지면 '여행의 신'이 이동하라는 신호다. 인간은 이동하는 존재다.
호모(Homo) 모투스(Motus)! 여행 다니면 '있있뜰뜬(있을 땐 있고 뜰 땐 뜬다)을 잘해야 한다. 나와 동반자는 '여신(여행의 신)'의 명령에 따라 군말 없이 뜨기로 한다. 메스티아여 안녕~
설산이 즐비한 우쉬굴리(Ushuguli)로 향한다. 우쉬굴리는 네팔의 포카라, 인도의 라다크, 파키스탄의 훈자 지역처럼 하늘에 대고 솟아오른 산이 높고 우람하다. 산맥의 높이가 3천~4천 미터를 자랑한다. 만년설과 아슬아슬한 협곡, 콸콸 쏟아지는 강물이 엄청나다.
마슈르카(승합차)를 타고 가는 길은 험하고 위태롭다. 산길이 장난이 아니다. 길옆은 산에서 흘러내린 돌더미와 흙이 수북하다. 이걸 쳐다보니 마음이 심란하고 심장이 쫄깃하다.
메스티아-우쉬굴리 지역을 호령하는 산맥은 편무암 지반이라 산의 근육이 허약해 중력을 못 이겨 돌과 흙을 아래로 흘러내린다.
봄이면 카프카스 산들은 몸을 푼다. 이 산들은 꽃 피는 봄이면 겨울에 엄청나게 저축한 눈과 얼음을 마구 쏟아낸다. 설산에서 눈이 녹아 쏟아지는 물로 인해 간혹 산사태가 일어나곤 한다. 우리는 보우하사 우쉬굴리에 무사히 도착한다.
천 년을 이어온 우쉬굴리 마을은 '중세의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유네스코는 이곳 주민들이 중세 시대 마을을 유지하느라 애쓴다며, 2006년 보존 지역으로 선정했다.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코쉬키(koshki)라는 스반(svan) 타워가 집집마다 우뚝 솟아 있다. 돌로 만든 이 탑의 평균 높이는 20~25m이고 스반 민족이 적의 침입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해 만든 방어형 주택이다.
1층은 가축 우리로 쓰고 2층은 곡식을 보관한다. 3~5층은 대피장소 및 망루 역할을 한다. 층과 층 사이는 사다리로 이동한다. 코쉬키 안에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어 거주 공간으로 쓴다.
우리는 마을 초입에 있는 나토(Nato)호텔에 머문다. 이름이 호텔이지 한국의 여인숙 급 정도이다. 나는 호기심에 주인장한테 "혹시 이 호텔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냐"고 물어보려다 실없는 농담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나토호텔의 나토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이름이 나토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나토호텔은 공유 공간이 없어 여행자는 자연히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직 비수기라 손님은 우리밖에 없다. 주방이 로비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남편이 수시로 부엌에 드나든다. 나토 여사는 기품이 있다. 몇 가구 안 되는 시골이라고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그녀는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법이 없고 반듯하고 친절하다. 또한 근처에 있는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들의 자녀는 대학에 다닌다. 그 아들은 키가 훤칠하고 잘 생겼다. 나한테 뭐 불편한 거 없냐고 한다. 대화를 잠깐 해봤더니 우리의 허술한 영어에 비해 그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처럼 능숙하다.
나토 여사는 가끔 빵과 스반 전통 치즈를 만들어 우리한테 맛보라며 호의를 베푼다. 빵은 담백하고 치즈는 짜지 않아 먹기 좋다.
우쉬굴리 주민 대다수는 트레킹족을 상대로 숙소와 식당을 운영한다. 성수기엔 말과 차량으로 쉬카라 빙하 투어 가이드에 종사한다.
사람들은 조지아어를 알아도 안 쓴다. 스바네티 지역이라 언어가 다르다. 스반 민족은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카프카스 산맥 지역의 소수 민족이다. 그들은 스반어를 한다. 내가 배운 가마르조바(안녕하세요), 마들로바(고맙습니다) 등은 안 쓴다.
나토 여사가 나한테 스반어 몇 개를 가르쳐 줬다. 그 마을에서 현지어 몇 개를 말하는 것은 예의다. 그래야 그들이 좋아하고 이방인은 대접받는다. 하지만 나는 부실한 기억력에도 그것을 메모하지 않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적자생존' 시대에 이러한 행동이 무례하다고 느꼈다.
동네는 온통 똥밭이다. 주민들은 개와 소와 말을 놓아 기른다. 방목하기 때문에 골목길은 소똥-개똥-말똥 삼종 세트가 비와 눈에 범벅 돼 질척질척 바닷가 뻘밭 같다.
옛날부터 개는 기본이고 소는 목축하여 고기와 치즈를 얻고 말은 관광객 수송용으로 기른다. 가끔 돼지도 반짝 출몰하여 동물농장 마을 분위기에 찬조 출연한다.
멧돼지가 될 뻔하다가 막판에 유전자가 삐끗하여 돼지가 된 가족 네 마리를 길에서 만난다. 반가워서 얘네들한테 빵을 주며 다가간다. 꿀꿀 꿀꿀꿀~ 잘도 먹는다. 큰 덩어리 빵을 게 눈 감추듯이 해치운다. 아니 돼지 눈 감춘다. 여긴 가축들을 다 방목을 하기 때문에 비탈지고 험악한 산비탈에서 소와 말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몸피가 바짝 말랐다. 부족한 사료와 혹독한 겨울을 나느라 꽤나 고생인 듯하다. 이런 헐벗고 배고픈 가축들을 길에서 만나는 일은 흔하고 자연스럽다. 이곳에서는 개와 돼지가 자유롭게 다닌다. 도시에 길들어진 인간과 동물, 과연 누가 노예인가?
이 동네에서 똥 안 밟기는 힘들다. 어느 종류의 똥이든 최소한 한두 번은 밟아줘야 우쉬굴리에 왔다는 인증을 받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행자는 똥을 밟고 당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도 며칠 지내면 적응한다. 마을을 떠나면 구수한 똥 냄새가 그리울 수도 있다. 개-소-말-돼지가 인간과 밀착돼 공생하는 마을이 우쉬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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