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의 잉(Ing) 강 유역은 물이 생명이라는 진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이 강은 도이야오(Doi Yao) 산맥에서 발원해 평야를 따라 흐르며 마을과 숲 그리고 사람의 삶을 연결한다.
그 중심에는 ‘분루앙(Boon Rueang)’이라 불리는 커뮤니티가 있다. 산과 강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태국 최대의 내륙 습지림을 품고 있으며, 이곳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숲과 물을 자신들의 삶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이 지역의 483헥타르에 달하는 습지림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다. 그곳은 마을의 식수원이자 논과 밭을 적시는 젖줄이며 생계의 터전이다. 276종 이상의 식물과 동물 그리고 87종의 어류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식탁을 채우고, 숲에서 얻은 약초로 병을 고치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세대를 이어왔다. 물은 단순히 흘러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생태계를 하나로 묶는 생명의 순환 그 자체다.
분루앙의 사람들은 “숲은 우리의 일부이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숲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2010년 대홍수 당시 인근 마을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분루앙은 살아남았다. 숲이 물을 머금어 홍수를 완화하고 범람을 조절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숲이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생태계도 수많은 위협에 직면해왔다. 1960년대 말부터 제분소나 담배 공장 등 산업시설이 들어서려는 시도가 있었고, 2015년에는 이 지역을 경제특구(SEZ)로 지정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만약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분루앙의 숲은 매립되고 강의 흐름은 끊어졌을 것이다. 이에 대응해 주민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분루앙 습지 산림 보존 그룹(Boon Rueang Wetland Forest Conservation Group)’을 결성한 그들은 마을 주민들을 조직하고 정부와 협상하며 SNS와 언론을 통해 습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렸다.
그들의 싸움은 끝내 승리로 이어졌다. 지방 정부는 경제특구 개발을 철회했고 분루앙의 숲은 온전히 지켜졌다. 주민들은 이후에도 숲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이용 규칙을 정해 자발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나무를 베는 시기와 장소를 제한하고 숲에서 얻는 수익의 일부를 보존 기금으로 돌리며 여성과 청년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는 전통 지식과 현대적 관리 방식을 결합한 공동체 주도의 환경 관리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다. 메콩(Mekong) 강 유역의 댐 건설로 인해 잉 강의 물 흐름이 줄어들고 기후 변화로 가뭄이 잦아지면서 습지는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물이 부족한 시기에는 주민들이 직접 회의를 열어 물 배급량을 정하고 서로 협상하며 분쟁을 예방한다. 그 과정에서 물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연대는 더욱 깊어진다.
분루앙 사람들에게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순환이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고 후손에게 전해야 할 책임이다. “여기는 우리의 슈퍼마켓이자 학교이며 신의 선물입니다.” 지역 보존 단체의 대표인 스롱폴 찬타르엉(Srongpol Chantharueang)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물과 숲이 함께 존재할 때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루앙 습지림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는 연간 약 4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지 경제적 가치를 나타낼 뿐 물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물은 생명을 잇는 혈관이며 숲은 그 혈관을 지탱하는 심장이다.
태국 북부의 잉 강과 분루앙 커뮤니티는 오늘도 물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마을의 생존기를 넘어 인류가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물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생명의 순환 그 자체임을 그들은 몸으로 말하고 있다.
BEST 뉴스
-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새로운 형사사법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주문했다.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경찰에 대해서는 외부 통제와 내부... -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16일 첫 한·중앙아 정상회의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잇달아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공급망과 인프라, 시장 확대를 비롯한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나선다. 오는 16일에는 5개국 정상이 함께하는 첫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
농지 전수조사에 커진 불안…정부 “투기와 농촌의 현실 구분하겠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 전수 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 [사진=농림수산식품부]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 농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 -
경기도, 장애인 자립지원주택에 ‘AI 자립비서’ 도입…안전·건강·일상생활 지원
▲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AI와 IoT를 활용해 안전·건강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AI 자립비서’ 사업을 10월부터 12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사진=경기도]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안전을 돕기 위해 인공지능(AI)과 ... -
사라지는 로힝야족의 마을, 폭력 피해 떠났지만 돌아갈 땅마저 잃는다
▲ UNHCR이 2026년 6월 공개한 콕스바자르 난민촌 항공사진 [사진=UNHCR] 미얀마에서 수십 년간 박해와 강제이주를 겪어온 로힝야족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살던 마을과 토지까지 사라지면서 향후 귀환할 수 있는 삶의 기반 ... -
우주에서 포착한 사우디 사막…모래언덕이 그려낸 ‘지구의 예술’
▲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 [사진=Jessica Meir x]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능선이 굽이치고, 능선을 따라 생긴 그림자가 대지 위에 독특한 무늬를 만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㉝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활용 전략: 혜택을 넘어 기업 가치 상승의 엔진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등급평가에서 AA 이상의 우수 등급을 획득한...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