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너지 연구가 다시 지하 깊숙이로 향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주 리드(Lead)에 위치한 샌포드 지하 연구시설(SURF)은 깊이 8000피트, 지하 약 2.4킬로미터 아래에 자리한 거대한 실험 공간이다. 한때 금광이었던 이곳은 이제 지구 깊은 곳의 열을 새로운 전력 자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SURF는 지난 10년간 다양한 지열 실험의 거점이 되어 왔고 최근에는 태평양 북서부 국립연구소(PNNL)가 주도하고 미국 에너지부(DOE)가 자금을 지원하는 ‘지하 신호 및 투과성 이해 센터(CUSSP)’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는 미국의 전력 생산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지닌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디지털 시대의 폭발적인 에너지 수요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서버, 전기차 충전소 등에서 소비되는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지속 가능한 대체 전력이 절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구 내부의 열을 이용하는 향상된 지열 시스템(Enhanced Geothermal Systems, EGS)은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EGS의 기본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냉수를 지하 깊숙이 주입하면 그 물은 뜨거운 암반에 의해 가열된 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그러나 기술적 난제는 여전히 많다.
시간이 지나면 지하의 균열이 광물화로 막히고 물의 흐름이 느려지거나 멈출 수 있다. “가장 큰 미지수는 이 저수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입니다.” CUSSP의 책임자인 케빈 로소(Kevin Rosso)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 기술이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열을 공급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현재 연구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SURF의 4,100피트 지점에는 이러한 실험을 위한 전용 테스트베드가 설치되어 있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온도, 화학 성분, 압력, 유속 등을 통제하며 복잡한 지하 환경을 인공적으로 재현한다. 각종 지진계와 전기저항 센서, 온도 측정 장비를 통해 지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수테라바이트에 이르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로소는 “우리는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 지열 흐름의 신호를 찾아내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지열 시스템의 수명을 예측하고 모델을 고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향상된 지열 기술을 ‘차세대 에너지 개척지’로 보고 있다. DOE는 EGS가 이론적으로 6,5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2023년 말, 구글은 스타트업 페르보 에너지(Fervo Energy)와 협력해 미국 최초의 상용화된 강화형 지열발전소 완공을 발표하면서 민간 기술 기업이 이 분야에 본격 진입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도 분명하다. 시추비용은 여전히 높고 균열 유지와 열효율의 불확실성은 상업화의 가장 큰 변수다.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보고서에서 “EGS의 경제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기술적 성공이 반드시 투자 수익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SURF와 같은 연구소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전력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콜로라도 광산학교의 지구화학자 알렉시스 나바르-시츨러(Alexis Navarre-Sitchler)는 “효율적이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지열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이 프로젝트는 바로 그 과학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CUSSP에는 약 40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학부생과 박사 후 연구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기계공학자, 지구화학자, 지구물리학자, 데이터 과학자들이 한 팀으로 협력하는 모습은 미래 에너지 연구의 다학제적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로소는 “CUSSP는 향상된 지열 시스템의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엔진”이라며 “이곳에서 배운 젊은 연구자들이 앞으로 미국의 에너지 기술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SURF의 연구는 또한 유타주에 위치한 ‘지열 에너지 연구를 위한 프론티어 관측소(FORGE)’ 프로젝트와 함께 DOE의 지열 전략을 보완한다. 미국 외에도 중국, 캐나다,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등이 심층 지하 실험실을 운영하며 경쟁적으로 지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이 EGS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수식어 때문이 아니다. 지열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기저전원(baseload)’이라는 점에서 태양광이나 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지질 환경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해외 자원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적 흐름 속에서 SURF 지하 실험실의 연구는 인류가 지구 내부의 열을 ‘디지털 시대의 전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많지만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미국은 에너지 독립의 새로운 장을 여는 동시에 지구가 품은 가장 오래된 열로 미래를 밝히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BEST 뉴스
-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새로운 형사사법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주문했다.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경찰에 대해서는 외부 통제와 내부... -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16일 첫 한·중앙아 정상회의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잇달아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공급망과 인프라, 시장 확대를 비롯한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나선다. 오는 16일에는 5개국 정상이 함께하는 첫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
농지 전수조사에 커진 불안…정부 “투기와 농촌의 현실 구분하겠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 전수 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 [사진=농림수산식품부]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 농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 -
경기도, 장애인 자립지원주택에 ‘AI 자립비서’ 도입…안전·건강·일상생활 지원
▲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AI와 IoT를 활용해 안전·건강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AI 자립비서’ 사업을 10월부터 12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사진=경기도]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안전을 돕기 위해 인공지능(AI)과 ... -
우주에서 포착한 사우디 사막…모래언덕이 그려낸 ‘지구의 예술’
▲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 [사진=Jessica Meir x]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능선이 굽이치고, 능선을 따라 생긴 그림자가 대지 위에 독특한 무늬를 만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 -
사라지는 로힝야족의 마을, 폭력 피해 떠났지만 돌아갈 땅마저 잃는다
▲ UNHCR이 2026년 6월 공개한 콕스바자르 난민촌 항공사진 [사진=UNHCR] 미얀마에서 수십 년간 박해와 강제이주를 겪어온 로힝야족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살던 마을과 토지까지 사라지면서 향후 귀환할 수 있는 삶의 기반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