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최고 권력층에서 또 한 명의 핵심 인사가 낙마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사실상 ‘2인자’로 불려온 안드리 예르막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택에 대한 반부패 기관의 급습 수 시간 만에 사임한 것이다. 예르막은 최근 미국과의 평화 협상을 총괄하며 국제적 입지를 넓히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퇴진은 국내 정치뿐 아니라 전쟁 외교에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다. 해외 언론들은 이 사건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만성적 부패 구조와 이를 관리·통제해야 할 거버넌스의 취약성이 다시금 노출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의 오른팔 예르막 급습…신뢰 기반의 거버넌스 붕괴 신호
유럽과 미국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최고위 권력자에 대한 급습이 정상적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크라이나 국가부패방지국(NABU)과 전문부패방지검찰청(SAPO), 두 기관의 합동 수색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권력 핵심 내부에서조차 제도적 통제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이번 급습은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관련 뇌물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직후 발생했다. 이미 장관 두 명이 스캔들로 퇴진했고, 젤렌스키의 과거 사업 파트너까지 연루된 상황에서 예르막까지 겨냥된 것이다. 국제 언론들은 이를 “우크라이나 권력 핵심부의 체계적 부패를 드러내는 정점”이라고 분석한다.
전쟁 중에도 흔들리는 제도…독립기관 약화 논란
해외 언론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젤렌스키 정부의 반부패 기관 개입 시도다. 올해 초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자인 검찰총장에게 NABU와 SAPO 감독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가, 국내외 감시 단체·EU·시민들의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해야 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맞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젤렌스키는 독립성을 회복시켰으나, 해외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대통령은 반부패 개혁의 간판이었지만, 동시에 독립기관을 정치적 영향력 아래 두려는 충동을 반복적으로 보여왔다.”
즉, 젤렌스키 정부는 반부패 제도 구축을 지지하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그 제도를 우회하려는 행태를 보였고 이것이 지금의 거버넌스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전쟁·평화 협상 국면에서 터져 나온 구조적 위험
예르막은 최근 미국과의 제네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이끌었고, 향후 예정된 협상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요구에 가까운 양보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르막의 사임은 협상 지휘 체계에 공백을 만들고 외교적 연속성을 무너뜨렸다.
국제 언론들은 이를 “거버넌스 실패가 국가안보와 외교전략에 직격탄을 날린 사례”로 해석한다.
이러한 부패에 대해 크렘린조차 즉각 반응하며 “부패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권 내부 혼란이 곧 전쟁 협상에서의 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노린 평가다.
EU 회원국 지위를 향한 중요한 시험대
EU는 우크라이나의 부패 척결을 회원국 승인 조건 중 최우선 요소로 제시해 왔다. 그럼에도 최고 권력층이 잇따라 반부패 조사의 대상이 되고, 대통령이 독립기관을 직접 통제하려 들었다는 점은 유럽 언론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의 제도적 성숙도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유럽 위원회 대변인은 이번 조사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많은 국제 전문가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부패 그 자체보다, 부패를 통제해야 하는 제도와 권력 구조가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는 전형적인 거버넌스 위기(governance crisis)로 규정된다.
거버넌스 실패인가, 제도적 진전인가…우크라이나의 두 얼굴
흥미롭게도 해외 언론은 이번 사태를 ‘부패한 국가의 증거’로만 보지 않는다.
최고 실세인 예르막조차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은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과 집행력이 어느 정도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EU 측도 이 점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사와 제도적 조치가 정치적 동맹의 변화나 권력투쟁과 뒤섞여 보인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이 필요할 때 독립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이 모순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크라이나는 부패와 싸우고 있지만, 그 부패를 통제할 거버넌스가 아직 충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전쟁 이후를 위한 핵심 과제
예르막의 사임은 우크라이나 반부패 제도의 성숙도와 젤렌스키 정부의 거버넌스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떠올랐다. 해외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향후 EU 가입을 실현하고, 전쟁 이후의 권력 재편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반부패 기관의 완전한 제도적 독립 보장, 권력 핵심에 대한 실질적 감시 체계 구축, 대통령실의 구조적 투명성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시 상황을 명분으로 한 권력 집중의 남용을 막고, 정치와 사법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세우는 것 역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번 예르막 사임은 이러한 과제들이 단순한 선언이나 개혁 의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견고한 제도적 장치와 정치적 자제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 사건이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반부패 전쟁은 이제 러시아와의 군사적 전쟁에 버금갈 만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두 번째 전선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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