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 탑이 무너지고 있다… 기후위기, 고산에서 시작해 대륙 전체로 확산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열대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그 영향은 산악 공동체의 생계에서부터 아마존 유역의 물 공급과 도시의 수력 발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뒤흔들고 있다.
볼리비아 안데스의 투니 콘도리리 산자락에서 5대째 살아온 헥토르 바실리오 초케후안카 포마는 최근 몇 년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거대한 흰빛으로 빛나던 타리하 빙하는 이제 절반 정도만 남았고, 조상 대대로 이어온 라마 방목지는 점점 줄어들어 결국 라마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통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송어 양식을 대안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한 가정의 변화가 아니라 안데스 산악 지역의 많은 공동체가 기후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UNEP와 국제 연구진에 따르면, 안데스의 열대 빙하는 지난 40년 동안 30~50%의 면적을 잃었다. 최근 발표된 ‘안데스 워터 타워(Andean Water Towers)’ 연구는 안데스 빙하의 후퇴 속도가 전 세계 평균보다 35% 빠르며 일부 지역에서는 매년 0.7m의 얼음층이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속도가 유지된다면 2100년 이전에 열대 빙하 대부분이 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빙하는 겨울이나 건기 동안 하천의 유량을 유지해 주는 핵심 수원이기 때문에 이들의 급격한 감소는 고산 지역뿐 아니라 저지대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안데스에서 녹은 빙하수는 아마존 분지를 흘러 수천만 명에게 물을 공급한다. 따라서 빙하 손실은 곧 아마존강 유역의 유량 감소, 습지 건조, 생태계 붕괴로 이어지고 농업과 도시 생활을 지탱하는 물과 에너지 공급 체계도 취약해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볼리비아의 라파스와 엘알토처럼 약 400만 명이 사는 도시가 빙하 감소와 함께 식수 부족과 수력 발전 축소라는 이중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건기에는 빙하 녹은 물이 사실상 마지막 수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도시와 농촌 모두에 더 큰 불안정을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는 원주민 공동체가 있다. 그들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데 거의 책임이 없지만 가장 먼저·가장 깊게 피해를 겪는다.
UNEP의 레티시아 카르발류는 기후변화가 전통적 지식과 생활방식을 흔들 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도록 공동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안데스 여러 지역에서는 라마 방목 대신 송어 양식이 시도되고 콜롬비아에서는 소액대출을 통해 물 재사용 시스템이나 바이오가스 시설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적응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동시에 새로운 환경 문제를 낳을 위험도 있다.
남미 8개국은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아마존 협력 조약기구(ACTO)를 중심으로 최초의 공동 물 관리 전략을 수립했다. UNEP와 글로벌환경기금(GEF)의 지원 아래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프로젝트에서는 빙하 모니터링, 도시 물 수요 분석, 가뭄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농촌 지역의 대체 수원 개발 등이 추진됐다. 이는 아마존 유역 전체를 하나의 생태·수자원 단위로 보고 공동 대응한 첫 시도이자 안데스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대륙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협력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변화는 남미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물 사용량은 6배 증가했고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와 강수 패턴은 더욱 불규칙해지고 있다. UN과 IPCC는 이러한 복합적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농업과 도시 물 공급, 수력 발전, 생태계 유지에 모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 세계 빙하는 2000년 이후 약 7조 톤 이상의 얼음을 잃었고, 2024년에도 기록적인 손실이 발생했다는 UN 보고는 기후 위기의 속도가 인간이 대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고가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한 물 관리, 빗물 활용 확대,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작물로의 전환, 원주민 공동체 기반의 지속 가능한 생계 전략 등 다양한 적응 방안은 이미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UN 총회가 2025년을 ‘국제 빙하 보존의 해’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을 근거로 한다.
카르발류는 “회복력을 높일 시간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기회는 빠르게 줄고 있다”고 말한다. 안데스의 빙하가 녹아 사라지는 속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만든 결과이며 그 부담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곧 전 세계가 마주하게 될 물 부족과 식량 위기의 예고편에 가깝다. 남아메리카의 산악 공동체가 겪고 있는 현실은 지구 전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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