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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대에도 UN과 UNEP가 만들어낸 조용하지만 결정적 진전... 환경 다자주의

  • 권민정 기자
  • 입력 2025.12.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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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긴장 속에서도 UNEP 환경 다자주의 회의 장면 [사진=UNEP]

 

지정학적 갈등이 깊어지고 국제사회 전반에서 다자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커지고 있지만 환경 분야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환경 다자주의는 되레 성과를 확대하며 국제사회가 여전히 공통의 문제 앞에서는 협력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다양한 환경 기구와 협약을 통해 중심적 조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후·자연·오염이라는 세 가지 지구 환경 위기를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한 구조가 점차 완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25년 6월 우루과이 푼타 델 에스테에서 이루어진 화학물질·폐기물·오염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패널(Intergovernmental Science-Policy Panel on Chemicals, Waste and Pollution)의 공식 출범이었다. 


이는 전 세계가 기후위기(IPCC)와 생물다양성 위기(IPBES)를 다루기 위해 구축한 체계에 이어 마지막 퍼즐이던 ‘오염’ 분야의 독립적 글로벌 패널이 마련된 것이다. 각국이 UNEA에서 합의해 출범을 추진한 이 패널은 앞으로 오염·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최고 수준의 동료평가 과학을 제공하고 정책 대안과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오염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처져 있었지만 UNEP는 “오염이 더 이상 보조적 의제일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패널 설립은 단순한 새 기구 하나가 아니라 기후·자연·오염이라는 세 개의 축이 비로소 동등한 글로벌 과학 정책 기반을 갖추게 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환경 다자주의의 성과는 화학물질과 폐기물 분야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25년 5월 열린 바젤·로테르담·스톡홀름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총 56건의 결정이 채택되며 유해 화학물질 규제 강화, 폐기물의 건전한 처리, 오염 방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전문 기관들은 이번 결정들을 “환경 건강 보호에서 가장 야심찬 조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같은 흐름은 해양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6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제3차 유엔 해양회의(UN Ocean Conference) 는 170여 개국이 모인 가운데 해양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정치적 선언을 채택하고 800건이 넘는 자발적 약속을 발표하며 해양 다자주의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다. 


UNEP는 이 회의에서 유엔 글로벌 컴팩트(UN Global Compact)와 함께 민간 자본을 ‘지속 가능한 블루 이코노미’에 유치하기 위한 해양 투자 프로토콜을 출범시키는 등 기존의 보전 중심을 넘어 재원 조달·경제 전환까지 포괄하는 다자 협력을 선도했다.


특히 주목할 흐름은 해양 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국제적 연대 강화이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해양 보호구역은 전체 바다의 약 9.6%에 그치며 그중 제대로 보호를 받는 구역은 2.7%에 불과하다. 


2030년까지 육지·바다의 30%를 보호한다는 ‘30×30’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진전 속도를 지금보다 몇 배는 높여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이번 유엔 해양 회의는 정치적 결집을 다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각국은 ‘해양 보호 구역의 친구들(Friends of Marine Protected Areas)’라는 새 협의체를 결성해 30×30 목표 달성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처럼 다양한 국제 협상과 회의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하나다. 다자주의는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 영역에서 오히려 재편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UNEP의 조정력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UNEP는 기존 과학 패널은 물론,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국제 협상, 해양 생물다양성(BBNJ) 협정의 사무국 논의와 화학·폐기물 협약의 운영 등 여러 주요 프로세스에서 행정·법률·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백본(backbone)’ 역할을 맡아왔다.


UNEP은 최근 자금 압박과 예산 삭감에 직면하면서도 오히려 조직 전반에 대한 기능 검토와 재정 구조 재정비에 착수했다. 이는 단순한 긴축이 아니라 기후 안정, 자연과의 조화 및 토지 황폐화 중립성, 오염 없는 미래라는 중기 전략 목표에 맞춰 더 민첩하고 효율적으로 변화하려는 시도다. 


UNEP는 “지금이야말로 환경을 위한 국제 협력을 후퇴시키지 않고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회원국들에 재정적 지지와 확고한 의지 유지를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환경의 날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참여도 기록적으로 확대되었다. 2024년 세계 환경의 날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3,000개가 넘는 행사가 열렸고 수백만 명이 디지털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흐름에도 여전히 도전은 존재한다. 해양 보호구역 확대는 여전히 느린 속도에 머물러 있으며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국제 협상(INC)은 각국의 이해 충돌 속에 어렵게 진전을 모색 중이다. 또한 분쟁 지역 특히 가자지구에서 환경 피해 평가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현실은 평화와 환경이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제 환경 거버넌스의 흐름은 분명하다. 환경은 더 이상 부차적 의제가 아니며 국제사회를 다시 협력의 테이블로 불러오는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 UNEP이 강조하듯 환경은 인류 생존과 직결되고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일수록 다자 협력을 통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다.


환경 다자주의는 지금 단순한 협의체의 확장이 아니라 지구적 체계를 재편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기후·자연·오염을 아우르는 새 패널의 탄생, 해양 보호를 위한 정치적 결집, 폐기물·화학물질 규제의 강화,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의 행동까지 이 모든 흐름은 ”협력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분열과 불확실성이 팽배한 시대에 유엔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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