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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연말 기자회견서 전쟁 ‘진전’ 강조…평화는 ‘러시아 조건’ 전제

  • 권민정 기자
  • 입력 2025.12.2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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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연말 기자회견서 전쟁 ‘진전’ 강조 [사진=President of Russia]

 

연말을 앞두고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례 마라톤 기자회견은 올해도 러시아 정치의 축소판 같은 모습으로 진행됐다. 몇 시간에 걸쳐 이어진 행사에서 푸틴은 국제 질서와 전쟁 그리고 외교 문제를 거침없이 언급하는 한편, 지방 도로 사정이나 지역 행정과 같은 사소한 민원성 질문에도 답하며 ‘국가 지도자’와 ‘지역 책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올해 기자회견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사는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에 약 1,050억 달러 규모의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직후 열렸고, 이는 전쟁이 4년 차로 접어든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에 시간과 무기를 동시에 제공하는 조치로 평가됐다. 푸틴은 이러한 서방의 지원을 강하게 의식한 듯 전쟁에 대해 예년보다 훨씬 직설적인 어조를 유지했다.


푸틴은 러시아군이 “전선 전체를 가로질러 진격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완전 혹은 부분적으로 장악했다고 주장하는 도시와 마을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러시아 국영 언론과 친정부 매체들 역시 이 발언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며,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보도는 군사적 성과를 부각함과 동시에 장기화되는 전쟁에 대한 국내 피로감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푸틴은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부인했다. 그는 “러시아는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모든 책임을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돌렸다. 동시에 그는 협상을 통한 전쟁 종식 가능성도 언급했다. 다만 그가 말한 ‘평화’는 명확한 전제 조건을 동반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이번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평화적 종식을 준비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는데, 이 ‘근본 원인’이라는 표현은 2022년 전면 침공 직전 러시아가 요구했던 조건들을 사실상 그대로 의미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 철수, 나토의 추가 확장 중단, 그리고 키이우 정권 교체에 준하는 요구가 그 핵심이다.


푸틴은 냉전 종식 이후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해 온 과정에 대한 오랜 불만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BBC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러시아가 존중받았다면 ‘특별 군사 작전’은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 언론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히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촉발해 북유럽에서 나토의 확장을 가속화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번 기자회견을 두고 푸틴의 ‘레드라인’이 여전히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비전통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 전쟁 종식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러시아의 기본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러시아 국부펀드 총재이자 푸틴의 핵심 측근인 키릴 드미트리예프와 만나 종전 방안을 논의한 사실이 전해졌지만 푸틴은 협상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조건을 낮추지는 않았다.


푸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노력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트럼프가 “분쟁을 끝내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며, 미국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의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결국 이번 연말 기자회견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화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그것은 러시아가 설정한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들이 여전히 협상의 출발선에 놓여 있다. 푸틴이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진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을 벌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지는 앞으로의 전황과 외교 움직임 속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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