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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에서 반환으로... 불법 고대 유물과 국제 문화유산 거버넌스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5.12.23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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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400~200년경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테라코타 여성상과 기원전 400~300년경의 아티카 적화형 도자기가 경매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 [사진=본햄스, 그래픽=ESG코리아뉴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국의 박물관과 문화 기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소장품의 식민지적 기원과 획득 과정에 대해 재검토에 나서고 있다. 약탈이나 불법 거래를 통해 유입된 예술품과 유물을 원래의 출신 국가로 반환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문화유산을 둘러싼 책임과 윤리에 대한 논의도 점차 공개적인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반환 사례 이면에서 여전히 국제 미술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불법 고대 유물 밀매 문제는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해 온 인물이 바로 그리스 출신의 법의학 고고학자 크리스토스 치로기아니스(Christos Tsirogiannis)다. 현재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스위스 연방 문화청의 고대 유물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20년 가까이 박물관, 경매장, 갤러리, 개인 소장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흩어진 불법 유물의 흔적을 추적해왔다. 


그의 연구는 전통적인 발굴 중심의 고고학과는 달리 범죄 수사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압수된 밀매상들의 사진 아카이브와 거래 문서 그리고 경찰 기록을 바탕으로 유물의 이동 경로를 재구성하고, 그 결과를 각국 수사기관과 공유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작업이다.


치로기아니스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최근 런던에서 예정됐던 본햄스(Bonhams) 경매였다. 기원전 400~200년경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테라코타 여성상과 기원전 400~300년경의 아티카 적화형 도자기가 경매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CNN과 치로기아니스의 조사로 해당 유물들이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국제 밀매상 지안프랑코 베치나(Gianfranco Becchina)의 아카이브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본햄스는 “추가 검토”를 이유로 두 유물을 경매에서 철회했다.


이러한 발견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치로기아니스의 연구는 1990년대 이탈리아와 스위스 당국이 대규모 밀매 조직을 적발하면서 확보한 방대한 기록에서 출발한다. 이 기록들에는 도굴 직후 흙이 묻은 상태의 유물 사진, 거래 메모, 중개상과 수집가의 이름이 촘촘히 남아 있었다. 그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현재 시장에 등장하는 유물들과 대조해 왔고 그 결과 지금까지 1,700점이 넘는 밀매 유물을 식별했다. 이 중 상당수는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 원소유 국가로 반환됐다.


치로기아니스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국제 미술 시장에서 관행처럼 용인되어 온 ‘불완전한 출처’다. 고대 유물은 제작 시점이 수천 년 전인 경우가 많아 명확한 소유 이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 자주 면죄부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는 불법 유물의 상당수가 의도적으로 핵심 유통 단계를 누락하거나 익명의 수집가를 내세운 허위 출처를 통해 합법 시장에 진입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발굴되지 않은 무덤이나 유적에서 도굴된 유물은 피해 국가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한 채 시장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개별 경매사나 박물관의 윤리 문제를 넘어 국제적 거버넌스의 한계를 드러낸다. 1970년 유네스코 문화재 불법 반출·반입 금지 협약 이후 반환 원칙은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았지만, 실제 이행은 여전히 기관의 자발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치로기아니스는 경매 회사와 박물관이 유물을 공개하기 전 이탈리아 등 관련 당국이 보유한 밀매 아카이브와 반드시 교차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적·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대학과 학계의 책임을 지적한다. 미래의 고고학자와 큐레이터 그리고 미술 시장 종사자들이 출처 없는 유물을 마주했을 때 법적·윤리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문화유산 연구가 종종 기부자와 후원자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는 현실 역시 이러한 공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알라드 피어슨 박물관은 치로기아니스와 협력해 자발적인 소장품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일부 유물이 과거 국제 밀매상들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당국 및 연구자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반환 절차를 논의 중이다. 치로기아니스는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투명성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작업은 미술 시장에서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문화유산 반환을 둘러싼 논의를 도덕적 비난이 아닌 제도와 책임의 문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역사적 유물을 원래의 소유 국가로 돌려보내는 일은 과거를 되돌리는 행위가 아니라 오늘날 국제사회가 어떤 가치와 원칙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치로기아니스의 집요한 추적은 그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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