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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된 왕좌가 밝힌 비밀… 유전적 다양성 낮아도 살아남은 일각고래의 생존 전략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5.12.3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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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각고래가 수영을 즐기고 있는 모습 [사진=WWF homepage]

 

북극의 차가운 바다를 유영하는 일각고래는 오랫동안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수컷의 머리에서 곧게 뻗은 나선형 상아는 전설 속 유니콘을 떠올리게 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어린이와 영화 속 캐릭터까지 매료시켰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는 이 매혹적인 동물이 단순히 독특한 외형만 가진 것이 아니라, 놀라운 생존 전략을 지닌 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2007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로젠보르 성 박물관이다. 한 젊은 연구원, 에바 가르데(Eva Garde)는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다소 파격적인 요청을 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실제 덴마크 국왕들이 사용했던 대관식 의자에 작은 구멍을 내어 샘플을 채취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의자는 단순한 왕좌가 아니었다. 팔걸이를 장식하고 있는 나선형 장식이 바로 일각고래의 상아였기 때문이다.


가르데의 관심사는 일각고래의 과거와 미래였다. 북극에 서식하는 이 이빨고래는 집단 전체로 보면 유전적 다양성이 극도로 낮은 종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낮으면 환경 변화나 질병에 취약해 멸종 위험이 커진다. 특히 북극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특성은 심각한 약점으로 여겨져 왔다. 가르데는 “과거의 일각고래는 과연 어떤 유전적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품었고, 수백 년 전 왕좌의 상아는 그 답을 찾기 위한 거의 완벽한 자료였다.


박물관은 신중한 논의 끝에 연구를 허락했고, 왕좌는 샘플 채취 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과학자들조차 놀라게 할 결과로 이어졌다. 고대 상아 DNA와 현대 일각고래의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이 종은 수천 년, 더 길게는 수만 년 동안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살아남아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발견이었다. 일각고래의 낮은 다양성은 최근의 급격한 개체 수 감소나 근친교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진화 과정 속에서 형성된 특징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유전체에서는 심각한 근친교배의 흔적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일각고래가 오랜 시간 비교적 안정적인 북극 환경에 특화되며, 제한된 유전자 풀 안에서도 생존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진화해 왔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 결과가 곧바로 낙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오히려 지금이 가장 민감한 시점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각고래는 현재 관측 가능한 한계에 가까운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한 채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문제는 북극의 기온 상승 속도다. 해빙이 줄어들고 서식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지금까지 효과적이었던 적응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유전적 선택지가 적은 종일수록,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여지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왕좌에서 시작된 작은 구멍 하나는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한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으며, 생존의 공식 역시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각고래는 낮은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약점을 안고도 오랫동안 북극 바다를 지켜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라는 전례 없는 압력 앞에서, 그 오랜 균형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영화 속 버디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며 정체성을 이해해 갔듯, 인간이 일각고래의 과거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은 이 종의 미래를 지키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고대 DNA와 현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각고래는 지금도 조용히 북극 바다를 헤엄치며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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