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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원주민 마을, 기후재난 이후 생존의 선택... 바다보다 높은 곳으로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6.05.2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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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태풍 ‘할롱(Halong)’이 베링해 연안 지역을 강타하면서 킵눅(Kipnuk)과 크위길링옥(Quinhagak·Kwigillingok) 마을이 사실상 붕괴된 모습 [사진=Ed Piotrowski WPDE facebook]

 

미국 알래스카 서부의 작은 원주민 마을들이 기후위기와 연방 재난 정책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태풍 ‘할롱(Halong)’이 베링해 연안 지역을 강타하면서 킵눅(Kipnuk)과 크위길링옥(Quinhagak·Kwigillingok) 마을은 사실상 붕괴됐다. 거대한 폭풍 해일과 홍수는 주택들을 기초째 무너뜨렸고, 일부 주민들은 급류에 휩쓸렸다. 영구동토층이 녹아 약해진 지반과 심각한 해안 침식은 피해를 더욱 키웠으며, 마을 곳곳은 하수와 연료가 섞인 오염수로 뒤덮였다. 이 사고로 최소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재난 이후 주민들은 반복되는 폭풍과 침식 위험을 피해 더 높은 지대로 공동체를 이전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실제 주민 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현행 스태퍼드법(Stafford Act)에 따라 연방 재난 지원금으로 공동체 전체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 법적 제한이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기존 홍수 지역에 다시 재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이번 사태는 기후위기 시대 미국 재난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이미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기존 홍수 지역에 다시 집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부족 지도자들은 기후변화로 폭풍과 해수 침식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같은 장소에 재건할 경우 또 다른 인명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다음 폭풍이 오면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갈등은 단순한 알래스카 지역 문제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미국 재난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은 오랫동안 허리케인과 산불, 홍수 피해 지역을 원래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복구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재난의 강도와 빈도가 커지면서 기존 복구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재난 대응은 단순 복구를 넘어 ‘기후 적응형 재건’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알래스카 원주민 공동체처럼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살아온 지역일수록 안전한 이주와 공동체 보존을 함께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재난 회복력 강화 정책을 추진하며, 침수 위험 지역 주민들이 더 안전한 곳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기후 재난 대응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다. 당시 FEMA는 재난 발생 이후 복구에만 집중하기보다, 사전 예방과 회복력 강화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는 재난 복구 비용 부담을 연방정부보다 주 정부와 지방 공동체가 더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일부 재난 완화 프로그램과 기후 관련 보조금을 동결하거나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알래스카 원주민 마을들이 추진하던 이주 계획과 홍수 방지 사업도 중단됐으며, 크위길링옥 마을의 FEMA 이전 타당성 조사와 킵눅 마을의 환경보호청(EPA) 침식 방지 지원 사업 역시 사실상 멈춰섰다.

 

현재 주민들은 고향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앵커리지와 베델 등 도시 지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평생 전통적 공동체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도시 생활은 낯설고 불안정하다. 일부 주민들은 임시 주거 지원이 예상보다 빨리 종료되면서 생계 불안과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자연재해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와 원주민 권리, 연방 거버넌스가 교차하는 복합적 위기라고 분석한다. 특히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로, 영구동토층 붕괴와 해안 침식, 초대형 폭풍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연방 의원들은 FEMA가 보다 유연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래스카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리사 머코스키는 원주민 공동체들이 “더 안전한 곳에서 미래를 재건할 수 있도록” 연방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이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킵눅과 크위길링옥 주민들은 잃어버린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해 임시 거주지와 새로운 정착지를 오가며 긴 시간을 버티고 있다.


주민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후가 바뀐 시대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정말 다시 살아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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