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착민 이용 식물 4,305종…비토착 사회보다 4배 많아
- 2060~2080년 이용 식물 28~34% 지역적 소실 전망…언어 소멸도 전통지식 위협
기후변화가 아마존의 숲과 생물종뿐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기록되고 세대를 거쳐 전승돼 온 토착민 사회의 식물 이용 지식과 문화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래 온실가스 배출 경로에 따라 아마존 토착문화가 이용하는 식물종 가운데 평균 28~34%가 2060~2080년 각 공동체의 생활권에서 지역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제학술지 Nature에 7월 8일 발표된 ‘지구 변화 속의 지식의 숲(The forest of knowledge under global change)’에서 로드리고 카마라-레레트(Rodrigo Cámara-Leret)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와 패트릭 로어댄즈(Patrick R. Roehrdanz) 국제보존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 연구자, 조르디 바스콤테(Jordi Bascompte) 취리히대 교수 연구팀은 아마존의 식물 다양성과 토착민의 식물 이용 지식, 기후변화와 언어 소멸 위험을 통합해 분석했다.
아마존은 전 세계 육상 생물다양성의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400개가 넘는 토착민 집단이 살아가는 지역이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기후변화가 식물과 동물에 미치는 영향이나 토착지식의 중요성을 각각 분석한 연구는 많았지만, 생물학적 유산과 문화적 유산을 연결해 동시에 위험을 정량화한 연구는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아마존을 ‘지식의 숲(forest of knowledge)’으로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숲에는 수많은 식물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 질병 치료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건축과 사냥에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어떤 식물이 공동체의 의례와 문화적 정체성에 연결되는지에 관한 지식도 함께 축적돼 있다.
따라서 특정 지역에서 식물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생물종 감소를 넘어 그 식물을 둘러싼 인간의 지식과 문화의 전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문제의식이다.
1504년부터 2023년까지 자료 분석…5,796개 식물종 이용
연구진은 아마존 지역의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1504년부터 2023년까지 축적된 700건의 문헌자료를 종합했다.
이를 통해 아마존 식물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음식, 의약, 건축재료, 문화적 용도 등과 관련한 9만536건의 이용 기록을 구축했다. 분석 대상은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 등 아마존 유역 전반이다.
분석 결과 아마존 주민들이 이용해 온 토착 식물은 최소 5,796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관다발 종자식물이 5,679종, 양치식물이 117종이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아마존의 알려진 종자식물 1만5,585종과 비교하면 약 36%에 해당하는 식물이 인간의 이용과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들 식물은 모두 195개 과와 1,284개 속에 걸쳐 분포했다.
특히 콩과(Fabaceae)가 662종으로 가장 많았으며 꼭두서니과(Rubiaceae) 339종, 야모란과(Melastomataceae) 214종, 포포나무과(Annonaceae) 182종, 녹나무과(Lauraceae) 176종 등이 뒤를 이었다.
야자류는 아마존 사람들의 삶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연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기록된 5개 식물종은 모두 야자류였다. 연구진은 야자류가 오늘날에도 아마존 지역 주민들의 식량안보와 문화적 관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토착민이 사용하는 식물종, 비토착 사회보다 4배 많아
토착민이 보유한 식물 지식의 규모도 확인됐다.
전체 연구 기록 가운데 약 55%가 토착민과 관련된 자료였으며, 토착문화에서 이용이 보고된 식물종은 4,305종이었다. 비토착 문화에서 보고된 1,012종보다 약 4배 많았다.
연구진이 검토한 문헌에는 아마존에서 알려진 400여 토착문화 가운데 243개 문화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이 가운데 48개 문화는 이미 소멸했으며, 현재 살아 있는 토착언어 156개에 관한 식물 이용 기록도 포함됐다.
식물 이용 지식의 지역적 특성도 강했다.
연구 결과 전체 식물 서비스 가운데 74%는 단 하나의 문화와 연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정 토착언어나 공동체가 사라질 경우 다른 문화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고유한 식물 이용 지식이 함께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특히 약용식물에 관한 지식이 많았다.
약용 목적의 식물 이용 기록은 3만3,245건으로 식용 목적의 1만2,333건보다 거의 세 배 많았다. 약용으로 이용되는 식물종도 3,862종으로 식용 식물 1,804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는 아마존의 생물다양성 손실이 토착사회의 전통적인 건강·의료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이용 식물이 더 큰 타격
연구진은 이어 기후변화가 아마존 식물의 미래 분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사람이 이용하는 식물 4,509종과 이용 기록이 없는 식물 3,920종 등 총 8,429개의 종분포모델(species distribution model)을 구축한 뒤 2060~2080년의 미래를 전망했다.
기후 시나리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활용되는 세 가지 공통사회경제경로(SSP)를 적용했다.
강력한 기후대응을 가정하는 SSP1-2.6과 높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되는 SSP3-7.0, 매우 높은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가정하는 SSP5-8.5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기후모델과 시나리오에서 인간이 이용하는 식물종의 서식범위가 이용되지 않는 식물종보다 더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전망됐다.
연구진은 전체 식물을 동일하게 분석하는 기존 거시생태학 연구만으로는 인간의 생활과 문화에 특별히 중요한 식물들이 받게 될 기후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약용으로 사용하는 식물종에서 감소 위험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60~2080년 이용 식물 평균 28~34% 지역적으로 사라질 가능성
연구진은 아마존 토착문화가 실제로 생활하는 지역을 기준으로 기후변화 영향을 다시 분석했다.
문헌에서 이용 식물이 최소 10종 이상 확인된 82개 토착언어권을 대상으로 해당 지역에서 이용되는 식물종의 미래 분포를 추정했다.
그 결과 2060~2080년 각 문화권에서 현재 이용되는 식물종 가운데 평균 28~34%가 해당 지역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마존 전체에서 해당 식물종이 멸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토착언어권에서 발생하는 ‘지역적 소실’을 뜻한다.
기후변화 대응이 비교적 강하게 이뤄지는 SSP1-2.6 시나리오에서도 평균 28%의 이용 식물이 지역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SSP3-7.0에서는 30%, 온실가스 배출이 매우 높은 SSP5-8.5에서는 평균 34%까지 높아졌다.
식물이 사라지면서 해당 식물이 인간에게 제공해 온 기능과 문화적 가치도 함께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음식과 약재, 건축재료, 도구, 의례 등 식물과 연결된 이른바 ‘식물 서비스(plant services)’의 손실은 기후 시나리오에 따라 평균 18~23%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영향이 아마존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유역 전반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소멸위기에 놓인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식물종과 식물 서비스의 예상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만큼 위험한 ‘언어 소멸’
연구는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종 감소와 함께 또 하나의 위험을 분석했다. 바로 토착언어의 소멸이다.
아마존의 전통적인 식물 지식은 상당 부분 구술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다. 식물의 이름과 약효, 채집 시기, 조리법, 의례적 의미 등이 언어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언어가 사라지면 관련 지식의 전승도 어려워질 수 있다.
연구진이 언어 소멸 위험 분석에 활용한 토착식물 관련 문헌 기록 7만6,390건 가운데 57%는 156개 토착언어와 관련된 기록이었으며, 이들 언어 가운데 56%는 Ethnologue 기준 소멸위기에 놓여 있었다.
연구진은 소멸위기의 토착언어가 금세기 말까지 사라지고 언어 소멸이 해당 지식의 소실로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아마존 전체의 식물 이용 지식 네트워크가 26% 축소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연구진은 언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언어와 관련된 모든 식물 지식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일부 지식은 다른 언어나 문화적 맥락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점도 전제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번 분석은 식물종 자체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해당 식물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 언어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 먼저 약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문화 보전을 하나의 연결된 문제로 분석했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로 특정 식물의 분포가 바뀌면 오랜 기간 해당 식물을 이용해 온 공동체도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토착언어와 문화가 사라지면 해당 지역의 식물에 관한 축적된 지식과 관리방식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이 서로 연결된 ‘생물문화적 다양성(biocultural diversity)’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아마존이 직면한 모든 위험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분석에는 삼림 벌채와 산불, 광산개발 등 아마존이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다른 환경 압력과의 상호작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가뭄과 같은 사건 역시 종분포모델에 직접 반영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관련 사례로 2024년 발생한 극심한 가뭄 이후 2025년 브라질너트(Bertholletia excelsa) 생산이 감소해 아마존 유역 여러 지역의 식량안보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제시했다.
다만 연구진은 종분포모델 자체에도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모델은 거시기후 자료에 기반해 숲 내부의 미기후가 제공하는 완충효과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 식물의 기후 노출 정도가 실제보다 크게 추정될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데이터는 과거 문헌에 기록된 식물 이용과 현재까지 실제로 이어지고 있는 이용을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헌에 기록된 모든 식물 이용이 현재 아마존 사회에서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도 있다.
‘숲을 보전한다’는 것의 의미도 달라져야
이번 연구는 아마존 보전정책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 생물다양성 정책이 주로 얼마나 많은 산림과 종을 보호할 것인지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해 온 식물과 그 식물을 둘러싼 지식·언어·문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생물학적 유산과 문화적 유산을 분리해 다루기보다 과학과 정책에서 두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마존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기후위험을 고려할 때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아마존 유역 국가 간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착민과 지역사회가 보유한 지식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구진은 지난 수백 년간 질병과 노예제, 폭력 등의 영향으로 수많은 문화와 언어가 이미 사라졌으며, 이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숲을 이용하고 관리하던 지식도 영구적으로 소실됐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토착언어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와 협력해 식물 지식을 기록하는 동시에 구술을 통한 세대 간 전승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구축한 아마존 식물 이용 데이터도 공개했다. 이는 향후 과학자와 정책당국, 비정부기구, 토착민과 지역사회가 생물문화적 복원과 보전정책을 설계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시대의 생물다양성 손실이 단순히 ‘몇 종이 사라지는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숲에서 식물이 사라질 때 그 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먹고, 치료하고, 사용하며 이야기를 이어온 인간의 지식과 기억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지식의 숲’을 지키는 것은 결국 식물과 사람, 그리고 오랜 시간 둘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함께 보전하는 문제라는 것이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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