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례 없는 집중호우에 전국이 ‘수해 참사’… 장마의 개념은 사라졌다
‘극한 호우’라는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니다. 지난 닷새간 한반도를 휩쓴 기록적인 폭우는 기후위기의 새로운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괴물 비구름’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이번 사태는 한국도 더 이상 기후 재난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확인시켰다.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는 한반도 전역을 강타하며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0일 기준 전국에서 17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피해 지역은 경남 산청, 경기 가평, 충남 아산, 전남 나주 등 남북을 가리지 않았다. 산청군 시천면에는 나흘간 무려 798㎜의 폭우가 쏟아졌고, 가평군에는 단 몇 시간 만에 200㎜ 가까운 비가 내리며 펜션 붕괴와 익사 사고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호우는 과거의 '장마' 개념과는 확연히 달랐다. 예년처럼 오랜 기간 약한 비가 지속되는 장맛비 대신 짧은 시간 동안 국지적으로 수백 밀리미터의 강수량이 집중되는 ‘괴물 비구름’이 반복 출현하며 재난의 양상을 바꿔놓았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장마 개념은 사라지고, 열대성 폭우에 가까운 집중 강수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산청군은 이번 폭우로 사상 처음 관할 전 지역에 대해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다. 이는 한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읍·면·동이 아닌 전체 지역을 대상으로 긴급대피를 권고한 전례 없는 조치로 자연재해의 양상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도심 침수와 농경지 유실, 도로와 교량 파괴, 산사태와 매몰 사고도 이어졌다. 충남 아산에서는 하천 범람과 만조가 겹치며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고,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400㎜ 넘는 폭우에 농경지와 주택이 초토화됐다. 나주 다시면 등지에서는 이재민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복구에 나섰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상이 컸다.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지금 기상청도 ‘여름철 장마’라는 기존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태평양 고기압과 정체전선의 상호작용 방식이 달라지면서 강수 패턴이 비정상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지성 집중호우, 이른 무더위, 예측 불가능한 강풍과 같은 ‘이상기후의 삼중고’가 이제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는 더 이상 일시적 비상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이라며 “이재민들이 조속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자원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재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신속히 지정하라”고 지시하며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현실로 다가온 재난이다. 이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탄소중립과 재난 대응 체계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괴물 비구름’이라는 경고가 이대로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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