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스타트업 드리프트 에너지(Drift Energy)가 ‘항해하는 수소 공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으며 재생에너지 산업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범선이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수소를 생산하고 항구에 공급하는 이동식 재생 에너지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는 구상이다.
드리프트의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이다. 고성능 쌍동선 선체에 장착된 수중 터빈이 선박이 항해할 때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고, 이 전력은 선상 전해조를 통해 바닷물을 수소로 분해한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선체 탱크에 저장됐다가 항구에서 하역돼 산업 공정, 운송, 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망이나 해저 케이블, 기초 설치가 필요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말 그대로 ‘자유 방목형 풍력 터빈’인 셈이다.
드리프트는 이미 2022년 영국 플리머스에서 열린 세일GP 대회에서 5m급 시제품을 시연한 바 있다. 현재는 연간 15만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이 58m급 상업용 선박을 설계 중이며, 출력은 1~2메가와트급을 목표로 한다. 이는 소규모지만 기존 해상 풍력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이며, 향후 자율 운항 기술이 도입되면 효율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측은 첫 선박의 제작 비용이 연구 개발 탓에 약 2,4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지만 규모가 커지면 단가는 ‘한 자릿수 백만 달러’까지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미 40척 이상의 초기 수주 기대가 있다는 점도 회사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드리프트의 기술적 차별점은 AI 기반의 ‘골디락스 알고리즘’이다. 선박은 최적의 바람 조건을 찾아 스스로 항로를 설정하는데, 이는 매 순간 바람에 대한 기상 데이터를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항해를 보장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이고 높은 로드팩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선박은 수소뿐만 아니라 친환경 암모니아나 메탄올을 생산하도록 개조될 수 있으며 선상 데이터 센터 운영이나 해양 기상·생태 데이터 수집 등 다목적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된다.
물론 전문가들은 기대와 함께 신중한 시각도 내놓는다. 이미 8~15메가와트급 대형 터빈을 수백 기 이상 집적한 해상 풍력 단지가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드리프트의 선박이 과연 규모의 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라는 지적이다. 또한 수소 탱크의 부피와 안전성, 국제 해역 운항 규제, 하역·유통 물류비용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프트의 시도는 기존의 고정식 재생 에너지 모델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전력망 인프라가 부족한 섬나라, 원격 지역, 해운사 등 특수한 수요처에 즉각 적용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으로는 해상 수소 공급망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항해하는 에너지 선박’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확장하는 실험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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