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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조약이 아닌 마을에서 시작된다

  • 윤재은 기자
  • 입력 2025.10.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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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착 공동체가 보여주는 지구와 인류의 공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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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토착 농산물을 파는 미얀마의 카렌족 여성 [사진=Salween Peace Park+UNDP]

 

유엔개발계획(UNDP)은 ‘사람을 치유하고, 자연을 치유하다(Healing people, healing nature)’라는 주제로, 세계 평화를 향한 지역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늘날 세계는 폭력과 갈등,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평화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진정한 평화는 전쟁 종전선언이나 국제 조약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곳곳의 마을과 강가, 숲과 농장에서 살아가는 토착 공동체의 손끝에서부터 싹튼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러한 지역 현장에 주목한다. 전 세계 생물다양성의 80%가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는 단 4분의 1의 땅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인류와 지구의 공존을 실천하는 주체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1950년부터 2000년 사이 벌어진 무장 분쟁의 80%가 토착민의 터전, 즉 생물다양성이 밀집한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로 인해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는 토지 상실, 강제 이주, 폭력 등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후 친화적 평화 구축(Climate-Informed Peacebuilding)’이 바로 그것이다. UNDP는 2002년부터 이러한 노력에 주목하며 ‘에퀘이터상(Equator Prize)’을 수여해왔다. 지금까지 94개국 306개 공동체가 이 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연 기반 해법을 인정받았다.


콜롬비아: 평화, 커피에서 피어나다


콜롬비아에서는 한때 총을 들었던 전투원들이 이제 커피콩을 갈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FEMNCAFÉ(펨카페) 협동조합’은 평화협정 이후 전직 전투원과 지역 주민이 함께 커피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며 화해의 길을 닦았다.


오스왈도 멘도사 회장은 “협정 체결 전에는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8년 만에 콜롬비아 최고의 커피 생산자로,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얀마: 평화, 숲의 관리에서 찾다


70년 넘게 자결권을 둘러싼 갈등을 겪은 미얀마 카렌족은 2015년 휴전 후 고향인 살윈강 유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지역은 ‘휴전 자본주의(ceasefire capitalism)’의 새로운 착취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카렌 공동체는 ‘살윈 평화공원(Salween Peace Park)’을 설립하고, 카렌 문화의 전통적 생태 지혜를 바탕으로 숲과 사람의 조화를 회복하고 있다. 폴 세인 트와 의장은 “카렌 문화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번영은 환경의 건강과 직결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에콰도르: 평화, 여성의 수호로 이어지다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한 최초의 나라 에콰도르에서도 평화는 여성과 연결된다. 아마존 지역의 ‘하쿠 아마존 재단(Hakhu Amazon Foundation)’은 불법 채굴과 마약 범죄로 인한 폭력에 맞서 여성 주도의 경제적·환경적 자립 모델을 만들어왔다.


핸드메이드 공예로 시작한 하쿠 디자인(Hakhu Design)은 현재 뉴욕 런웨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아마존 최초의 여성 토착 수호대 ‘유투리 와르미(Yuturi Warmi)’를 결성해 숲과 강을 지키는 평화의 방패가 되었다.


하쿠의 리더 레오나르도 세르다는 “우리는 단지 수공예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키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평화는 단순히 인간 사이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과 맺은 관계의 균열을 치유하는 일이며, 토착민의 지혜는 인류가 잃어버린 균형의 해답을 품고 있다. 이제 세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배워야 할 때다. 평화는 머나먼 이상이 아니라, 숲과 강, 마을에서 이미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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