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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달리기의 조건을 바꾸다... 마라톤이 전하는 지구의 경고

  • 하윤아 기자
  • 입력 2025.11.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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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사진=RUN 4 FFWPU]

 

기후 변화가 인간의 일상과 스포츠의 세계까지 뒤흔들고 있다. 최근 발표된 Climate Central(기후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기록을 노릴 수 있는 이상적인 날씨’를 만날 확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한 해 중 특정 시기 중 하나인 시원하고 맑은 날씨가 마라톤 대회에 적합하다고 여겨졌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러한 조건이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엘리트 선수와 일반 주자 모두에게 ‘최적의 달리기 온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엘리트 남성 주자는 약 4도, 여성은 10도에서 가장 뛰어난 기록을 세우며, 일반 남성 주자는 6도, 여성은 7도에서 가장 좋은 성능을 보인다. 


하지만 지구가 점점 따뜻해짐에 따라 이러한 기온에 맞는 대회 일을 맞이할 확률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분석된 221개의 글로벌 마라톤 중 190개, 즉 86%가 2045년까지 최적의 기온 조건을 잃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세계 7대 메이저 마라톤(Abbott World Marathon Majors)조차 예외는 아니다. 그중 도쿄 마라톤은 현재 엘리트 남성 주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대회로 꼽히지만, 2045년에는 ‘기록 경신이 가능한 날씨’를 맞이할 확률이 12%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를린과 도쿄에서 2025년에 나타난 이례적인 더위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발생 확률이 각각 2배, 3배나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더 이상 ‘운이 나쁜 해’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기후 변화의 결과다.


기온이 상승하면 단순히 주자들이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체온 조절에 쓰이는 에너지가 늘어나 기록이 떨어지고 탈수·열사병의 위험이 커지며 경기 집중력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미 여러 연구는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완주 시간이 몇 퍼센트씩 느려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마라톤 대회의 출발 시간을 일출에 가깝게 조정하거나 코스를 더 시원한 지역으로 옮기는 등의 대응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기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록의 무대’ 자체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가 스포츠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삶의 방식, 도시 계획, 건강과 여가, 심지어 문화의 형태까지 다시 설계해야 함을 뜻한다. 


여름철 폭염으로 야외 행사가 취소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변 스포츠가 위협받으며, 대기오염이 심화될수록 시민들의 운동 습관과 건강 지표도 달라지고 있다. 마라톤이 상징하는 ‘인간의 도전과 인내’조차 이제는 지구의 기후 조건에 종속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때 마라톤은 도시의 축제이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예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무대조차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더 이상 ‘좋은 날씨’를 기다릴 수 없는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록이 아니라 지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화석 연료 의존을 줄이고 기후 오염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마라톤은 더 이상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지구의 한계가 드러나는 경고’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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